부산컨트리클럽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다. 클럽 회원도 노년층이 많다. 평균 나이가 73세라고 한다.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은 올해 우리 나이로 99세이다. 이분은 서울에서 요양 중이어서 라운딩은 힘들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98세와 97세의 회원이 있다. 이분들은 가끔 골프장에 나와 라운딩을 즐기는데 18홀을 다 돌지는 못하지만 나인 홀은 거뜬히 즐긴다고 골프장 관계자가 전한다. 그야말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9988’을 실천하는 분들이다.

모임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예로 들었지만 ‘백세시대’는 이렇게 우리 곁에 와 있다. 국내 100세 이상 인구가 무려 1만8000명이 넘는다. 부산은 1600명쯤 된다. 유엔이 세계인구 고령화 보고서에서 지칭한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도래했다. 몇 년 전 히트했던 ‘백세인생’이라는 유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노인의 기준도 완전히 바뀌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50대 초반이었다. 반세기 만에 세상이 확 달라졌다.

예전에 장수했다며 마을 떠들썩하게 치르던 환갑잔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칠순 잔치도 거의 하지 않고 대신 여행을 간다. ‘꽃보다 할배’ 같은 여행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게 요즘 세태다. 일흔 나이는 예로부터 드물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그야말로 당나라 얘기가 되어버렸다.

장수를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청려장이다.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인데 통일신라 시대부터 왕이 장수 노인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그 기준은 70세였다. 요즘도 청려장을 준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1343명에게 청려장을 선물했는데 그 대상은 100세를 맞은 어르신이었다.

엊그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인 연령 기준을 현재의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언급했다. 2025년께 초고령사회(노인 비중 20% 초과)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가 노인연령 기준을 높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몇 해 전 유엔은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해 연령 기준을 새로 정의하자고 제안했다. 내용은 이렇다. 미성년자(0~17세), 청년(18~65세), 중년(66~79세), 노년(80~99세), 장수노인(100세 이상). 65세까지는 청년이고 80세부터가 노년이다. 당시엔 이거 좀 앞서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보면 적절하지 않은가. 자료를 찾아보니 유엔이 65세를 고령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1950년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정체기를 지나 감소기로 접어드는 단계다. 지난해 하반기 합계출산율은 1명도 채 되지 않았다. 늘어나는 노인을 부양할 중장년층의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결국 노인 비율을 줄이려면 연령 기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기까지 만만찮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65세부터 받던 복지혜택이 줄어든다. 저항이 있을 것이다. 언뜻 생각나는 현금성 지원만 해도 도시철도 무임승차,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등 몇 가지가 된다. 특히 기초연금 같은 것은 그러잖아도 말이 많은데 지급을 늦추는 게 쉽지는 않을 터다. 적은 돈이지만 이게 끊기면 더 빈곤해지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국민연금도 큰 문제다. 회사에서 어찌어찌 정년을 채워 60세에 퇴직한다고 치자. 지금은 은퇴 후 연금을 받기까지 기간이 짧지만, 노인 기준이 높아진다면 10년을 소득 없이 버텨내야 한다. 이 중 상당수는 빈곤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런 빈곤 노인이 180만 명 정도 된다고 추산한다. 이뿐인가. 정부의 노인 일자리정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65~70세 노인들은 70세 이상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결국 문제는 일자리로 귀결된다. 노인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청년 일자리도 없는 마당에…”라는 반론도 있겠지만,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 다른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

일자리나 소득만이 복지는 아니다. 지지난해 국제신문이 연재했던 ‘스포츠가 복지다’는 기사에서 주장했듯이 노인들이 싸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육 관련 시설 확충도 필요하다. 질병과 가난을 동반한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또 마음의 건강을 지켜줄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도 필수다. 소설 ‘은교’의 유명한 대목처럼 늙음은 우리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다들 노인이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다. 사족으로 당나라 얘기 하나만 더 하자. 마음이 답답하다면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남경희로(覽鏡喜老·거울 보고 늙음을 기뻐함)’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약간은 힐링이 될 것 같다.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