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아무리 아파도, 엄마 아빠를 부르짖더라도 부모가 대신 아파줄 수 없다’라는 내용의 글을 이어령 선생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딸을 먼저 보낸 아픔이 있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다 보니 그 내용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대신 그 고통을 질 수 없듯이 그 얇은 살갗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타인이 내 주체성을 훼손시킬 때도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타인이 되고자 하더라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 것이다. 결국 인간의 생이란 홀로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자기만의 고통을 감내하다가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허무한 것일까. 그래서 장삼이사는 이 허무한 인생에 의미를 찾기 위해 그렇게 종교나 예술 등에 몰두하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장기이식을 하는 외과의사로서 하나의 장기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볼 때 인간의 고독한 운명이 상징적으로나마 극복되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뇌사가 되어 이미 뇌의 기능은 정지한 상태에서 고인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고인의 유족들이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 여러 명의 사람이 새 생명을 얻는 모습을 볼 때 특히 그러하다.

태어날 때부터 B형 간염을 갖고 있다가 자식들을 다 건사한 중년 가장에게 갑자기 나타난 심한 간경화는 가정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럴 때 이름 모를 누군가의 간이 이 가장에게 이식되면 가정 전체가 살아난다. 소아 당뇨로 어렸을 적부터 놀림을 받을까 봐 화장실에서 몰래 인슐린 주사를 자기 몸에 놓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 천형과도 다름 없는 당뇨 때문에 신장이 망가져 투석까지 하게 된다. 이미 한 쪽 눈은 실명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에게 이식된 췌장과 신장은 투석은 물론이고 당뇨로부터 그녀를 해방시킨다.

이런 감동적인 상황을 겪을 때마다 장기이식을 하는 외과의사가 된 것이 몸은 비록 고되지만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의학은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감동도 장기이식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었을 때만 느낄 수 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기계와 달라 같은 데이터를 입력해도 항상 같은 출력값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수술이 어려워 수술 자체가 실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수술은 잘 됐으나 이식받은 장기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면역억제제를 규칙적으로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반응을 일으켜 결국 이식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이런 실패를 겪는 사람은 오히려 운이 좋은 경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장기 부족으로 대다수의 말기 장기질환 환자는 이식 수술조차 못 받아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뇌사자 장기기증의 비율은 100만 명당 10명 정도로 한 해 약 500명의 뇌사기증자가 발생한다. 아시아권에선 가장 앞서는 편이지만 장기기증 선진국인 스페인이나 미국, 영국 등에 비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다. 뇌사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생체 기증이 많이 이뤄진다. 생체 간이식은 우리나라가 가장 기술이 앞선다. 이 때문에 생체 기증의 빈도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생체이식을 포함한 간이식의 경우 양산부산대병원이 국내 ‘빅4’에 들 정도로 실적이 우수하다. 해서, 굳이 간이식을 할 경우 서울에 갈 필요가 없다.

뇌사자의 장기가 부족해 생체 장기이식수술의 기술이 발달됐다는 것이 물론 자랑스러운 면도 있으나 그럴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히려 더 선진국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좀 씁쓸한 면도 있다. 다행인 점은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문화가 좋아지고 있는 것이 체감된다는 것이다. 뇌사자와 장기를 기증하는 분의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개선되고 있고, 시민의 인식도 바뀌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역동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으로 급격히 발전해오며 여러 부작용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시나브로 개선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볼 때 희망은 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