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대기업을 시작으로 최대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정책이 시행됐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 시행에 이은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서 주머니는 부자가 됐지만, 그에 걸맞은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는 부족한 여가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 지난해 한 취업포털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자신을 시간 빈곤자라고 답할 정도였다. 시간 빈곤은 일주일 168시간에서 개인 관리, 가사, 보육 등 가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부분을 빼면 남은 시간이 주당 근로 시간보다 적은 경우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란의 여진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진보론자들은 앞선 군사정권의 ‘하면 된다’식 성과주의가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당연시하고 있다. 반면 긍정 마인드로 무장한 근면 성실함이 오늘날 이 정도의 경제 성과로 이어졌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획일적이고 갑작스러운 근로기간 단축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은 설상가상이라고 주장한다. 탄력근로제의 구체적 방법을 두고는 현재도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 못 하는 직장인도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가 62만9000명으로 전년 대비 10.3% 늘었다고 발표했다.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원하는 ‘투잡 희망자’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과 삶(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하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적잖은 청년 구직자들이 근무 조건으로 최소한의 여가 보장을 원한다는 것이 각종 조사로 입증되고 있다.
일선 기업들도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 정책과 별개로 직원들에게 시간을 돌려줌으로써 오히려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실시된 부산시의 제3회 일생활균형 우수기업 경진대회 수상 기업들이 좋은 예다. 여성 직원이 많은 한 기업은 반일근무제, 불필요한 회식 줄이기 등을 과감하게 도입해 직원들이 가사를 챙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회사는 안마사, 심리상담사를 고용해 육체적·심리적 건강을 돕고 있다. 또 다른 회사는 집중근무제, 정시퇴근, 퇴근 후 연락 자제 등을 시도해 높아진 업무 효율을 확인했다. 3D기계부품 제조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를 벗어나 청년층의 기호와 수요에 부합하는 작업 방식을 도입해 ‘인기 직장’이 됐다. 한 중견 병원은 자동육아휴직, 복지몰 운영 등 출산과 육아 지원에 남다른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직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업무 태도로 연결됐다. 시와 이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재)일·생활균형재단 관계자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일생활 균형을 통해 직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등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공개된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중반 이하 청년층의 미혼율이 ‘미혼 급증’을 먼저 겪었던 일본을 이미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5~29세 남성 미혼율은 우리나라가 17%포인트나 더 높았다. 미혼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성교제 비율은 남성 33%, 여성 37%로 매우 낮았다. 앞으로도 미혼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개연성을 보여준다. 또 지난 9일 발표된 ‘2018년 연간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해 부산의 취업자 수는 165만7000명으로 2017년보다 2만8000명 줄었다. 이 감소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3만 명) 이후 가장 큰 것이다. 같은 기간 전국의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청년들의 낮은 혼인율과 일자리 부족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기업들의 자발적인 일·생활균형 실천이 이 문제 해결에 적지만 분명한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업들의 일·생활균형 경영 확산에 시와 관련 기관의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생활레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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