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간 어떤 문을 열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6년은 내가 집을 떠나 살아온 기간이다. 경기도 평택이 본가인 나는 고등학교를 전주로 가면서부터 집을 떠났다. 수능을 한 번 더 준비할 때는 서울에서 지냈고 그 후 지금까지의 2년은 대학을 다니면서 부산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머물렀으니 집에는 거의 가지를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방을 옮겨 다녔다. 기숙사에 살 때도 있었고 친구 집에 살 때도 있었다. 여럿이 같이 살 때도 있었고 혼자 살 때도 있었다. 1년을 살았던 방도 있었지만, 단 일주일만 살았던 방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에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정해진 주소가 없었다. 사는 곳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할 거라는 건 어찌 보면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열일곱 살부터의 유목민 같은 생활이 내 마음에 구멍을 하나 파놓을 거라고는 알지 못했다. 유목민들은 떠돌아다니더라도 그들의 부모와 함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곁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분들로부터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 중학생 때 학교 운동장에서 맡던 평택 앞바다의 냄새를 지금 부산 앞바다에서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지만, 그 당시 아버지께 안겼을 때 그 품에서 나던 냄새는 지금 여기서는 맡을 수 없다.

손을 쓰는 생산직 노동자이셨던 아버지는 퇴근 후 가끔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손가락 끝에 빨간 약을 채워 넣고 계셨다. 집을 떠나오기 전의 기억인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이걸 잊고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에 크레바스가 깊어지고 빙하처럼 쓸쓸한 구멍이 생긴 것 같다. 어디에 살든 나를 편치 않게 만드는 그 구멍 말이다. 내가 부모님께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저 바빠요”였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부모님과의 통화는 항상 “저 바빠요”라는 말과 함께 짧게 끝나기 일쑤였고 가끔 본가에 짧게 가 있는 동안에도 “저 바빠요”라는 말과 함께 내 공부와 일에만 신경을 썼다. 내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모른 채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그동안 부모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 두 달 전인가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께서 평소에는 소고기를 잘 안 사오시는데 내가 집에 올 때면 항상 소고기를 사오신다고. 그리고 어머니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당신께서는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를 하지 못했지만 실은 항상 전화를 걸고 싶었었노라고. 그런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멀어져서 생긴 내 마음의 빈 곳은 다름 아닌 주소란이었다. 공간적인 의미의 주소가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주소였다. 그동안 수많은 주소란에 그때그때 살고 있는 주소를 척척 적었지만 만약 마음의 주소를 묻는 칸이 있었다면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칸을 채우려고 한다. 사람에게는 부모와 그분들의 사랑이 필요하고 난 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너무 오랫동안 몰랐던 탓에 솔직히 어떻게 해야 이걸 채울 수 있을지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부드러운 내 손을 보면서 아버지의 거친 손을 떠올리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방에서 내가 먹은 그릇을 닦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 있을 때면 지난 20년 동안 이렇게 부엌에 서 계시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려 한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변에서, 일상 속에서 그분들을 느끼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분들께 다가가야겠다. 평택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해야 할까, 겨울을 맞아 목도리라도 하나 사들고 가야 할까. 일단은 오랜만에 전화를 한 통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시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웠습니다.”

동아대 의예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