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의 마지막 날이다. 작년 이맘때 희망을 품고 새해를 기다렸던 것과는 사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기업이나 가계 할 것 없이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바닥을 헤매는 조선과 자동차를 대신해 그동안 경제를 지탱해오던 반도체마저 이제 힘에 부치는 형국이다. 게다가 새해엔 더욱 힘들어진다는 비관적인 전망뿐이다.

정치 역시 늘 그렇듯 혼란스럽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눈물 덕분에 겨우 통과된 ‘김용균법’은 하루 만에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난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유치원3법은 결국 해를 넘겼다. ‘사유재산을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한국당의 그럴듯하지만 해괴한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선거제 개편도 거대 양당의 침묵 속에 진전이 없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그대로 표현됐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8년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었다. 혼용무도(昏庸無道: 2015, 나라가 암흑에 뒤덮여 어지러움)의 시절을 깨치고 군주민수(君舟民水: 2016, 백성은 물, 임금은 배, 강물이 배를 뒤집을 수 있음)를 실현한 민심은 파사현정(破邪顯正: 2017, 사악함을 물리쳐 옳은 것을 세움)을 기대했지만,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이것저것 벌여놓은 건 많지만 남북 정상회담 외엔 똑 부러지게 결실을 본 게 없다. 적폐 청산은 기득권층의 저항에 오리무중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은 불황 속에 강행하다 역풍을 맞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시작단계에서 발목 잡힌 형국이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절벽, 자영업 몰락 등 각종 위기의 책임을 뒤집어쓰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민심인 걸.

대중은 원래 그렇다. 연심(戀心)과 변심(變心), 뜻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글자는 작은 부수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대중이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쯤이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거다. 사정이 이러니 문 대통령의 인기도 급전직하, 새해를 앞두고는 지지율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했다. 지난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자료를 보면 부정평가가 51.6%로 긍정평가 43.8%를 크게 앞질렀다.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탄생한 정권이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너무 높았던 지지율이 되레 독이 된 건 아닌지.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다 아는 것처럼 경제다. 남북관계를 아무리 잘 처리해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민심은 떠난다. 지금 한국경제는 누가 와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의 활력을 잃어간다. 가계 빚은 또 어떤가. 금리가 조금 더 오르면 폭탄이 터질지도 모른다. 이러니 내수시장이 살아날 리 없다. 밖이라고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이익만 챙기려 싸우고 세계 경제는 유탄을 맞는 형국이다.

우파는 ‘기회는 이때다’며 이 모든 게 문재인 탓이라고 총공세에 나섰다. 최근 정국의 구도나 분위기가 참여정부 시절의 그것이 재연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이 위기를 돌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심을 되돌리고 정치권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책임을 물어야 하는 곳엔 책임을 묻고, 쇄신이 필요한 곳에는 메스를 대야 한다. 권력 핵심의 인적 쇄신도 검토해야 한다.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고 무조건 버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 편 챙기기의 협소함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선 안 된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은 저서 ‘초격차’에서 인사는 손익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읍참마속, 눈물을 흘리며 수족을 베야 한다.

‘마시멜로 챌린지’란 게임이 있다. 스파게티면과 테이프, 실, 마시멜로를 사용해 주어진 시간 안에 탑을 쌓는 게임이다. 유치원생, 건축가, MBA 졸업자, 최고기술 책임자 등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했다. 누가 가장 높이 쌓을까?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MBA 졸업자나 최고기술 책임자보다 유치원생들이 더 높게 쌓는다. 다른 집단이 이리저리 궁리하고 토론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유치원생들은 무작정 쌓기 시작한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국정 운영이 마시멜로 탑 쌓는 게임과는 다르다. 강조하고 싶은 건 결국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는 거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무언가 잘못됐다면 곧바로 의사결정을 조정해야 한다.

여태까지의 칭찬은 오늘로 잊자. 걱정과 비판과 조언을 새겨 새날을 맞이하자.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벌써 3분의 1이 지났다. 그야말로 任重道遠이다.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