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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두 개의 빛이 어우러지는 시간 /한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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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2-30 19:16:26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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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한동안 주위가 희미하게 밝은 박명(薄明)의 상태. ‘밤’이라 하기에는 아직 빛이 꺼지지 않았고, ‘낮’이라 부르기엔 이미 어둑해진 시간이다.
   
점차 짙어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도시의 건물들이 어스레하게 만들어 내는 풍경과 은은해진 색감은 생각마저 차분하게 만든다.

이 시간을 영어로는 두 개의 빛이 공존한다는 의미로 ‘twilight’라고 한다. 여명(黎明) 서광(曙光) 황혼(黃昏) 석음(夕陰) 땅거미 등 비슷한 단어가 여럿 있으나 새벽과 저녁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박명’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겠다.

커피가 어울리는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박명시(薄明視)는 위험한 시간이다. 빛이 감소해 사물을 선명하게 보기가 힘들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간에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물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2011~2015)에 따르면 하루 중 교통사고가 특히 많은 시간은 오전 6시 이전 새벽이나 오후 6시 이후 저녁이다. 과거 여름철 길어진 낮 시간을 보정하기 위한 서머타임제가 잠깐 실시된 적이 있다. 서머타임 시행 후 박명시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시행 전에 비해 0.5%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빛을 받아 물체를 구분하는 눈의 망막에는 두 종류의 세포가 있다. 밝은 빛과 색을 구별하는 ‘원추(圓錐)세포’와 어두운 빛을 감지하는 막대모양의 ‘간상(桿狀)세포’가 그것이다.

박명시에 시야가 흐려지는 이유는 밝은 빛을 받아들이던 원추세포의 반응숫자가 주는 반면 어둠에 간상세포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박명시에는 색깔도 왜곡된다. 이 이론을 처음 발견한 체코의 생리학자의 이름을 따 ‘푸르키네 효과’라고 한다. 밝은 장소에서는 빨강이 선명하게 먼 곳까지 보이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파랑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또한 간상세포의 기능에 의한 것으로, 사람의 눈은 어두워질수록 푸른색에 민감해진다. 영화관 같은 실내공연장의 의자가 빨간색인 것이나, 비상구 표시등이 녹색인 것, 일본의 어느 지역에 설치된 청색의 가로등도 모두 숨어 있는 과학적인 이유다.

살아가며 두 개의 생각이 충돌할 때도 있다. 서로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보와 보수의 생각들, 페미니즘을 둘러싼 상대 성(性)에 대한 그릇된 극한의 혐오감. 이 사회에서 만나는 두 가지 관점이나 논리의 상충은 너무나 만연하다.

어느 쪽 생각과 논리를 따를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토론이나 협상, 수용의 과정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며, 때론 거친 표현이 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그릇된 것으로 단정하거나,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태도는 올바른 토론의 형태가 아니다. 합당한 논리와 타당한 근거 없이 고함과 막말이 난무하는 사회, 자신의 주장만을 왜곡시켜 퍼뜨리는 가짜 뉴스, 자신의 입장을 알아달라고 거리에서 목청껏 외치는 일부 시위대는 한 해 동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양비론’을 말하려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릇된 역사와 독재, 탄압이라는 형태를 올곧게 고쳐 세우기 위해서는 용기와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통해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수많은 갈등과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못을 바로잡아온 우리 국민의 날카로운 지성을 믿는다.
   
문제는 ‘잘못된 방식의 주장’과 ‘그릇된 판단’이다. 두 생각이 공존할 수 있다고 배려하는 것은 박명시에 뚜렷한 시야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모양이다. 새해에는 두 개의 빛이 균형 있게 어우러지면서 합리적인 변화가 만들어지는 박명을 기대해본다.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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