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화개면 용강마을에 위치한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 집 마당을 일명 햇살마당이라 부릅니다. 사시사철 온종일 따뜻한 햇살이 들기 때문이지요. 특히 요즘 같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이면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필자를 비롯해서 내 집을 찾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지리산 남쪽 자락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은 소박한 집과 어울리는 딱 맞춤한 마당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좋은데 마당 가득 하루 내내 햇빛이라니!

축복받은 마당인 것이 당연하고 그 품에 사는 나는 덤으로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만합니다. 덤으로 우리 집 인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림인 쌍계사와 칠불사, 지리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 화개장터 등 볼거리도 많답니다.

겨울에는 햇빛만 있으면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아까워 마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마루 깊숙이 들어온 햇살을 등지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집을 찾아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먹을거리 다듬고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보고 일상적인 것들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그냥 서성이기도 하고…. 하여튼 저의 모든 일상적인 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물론 계절에 따라서는 생각이 달라지기는 한 것이 그늘이 없어서 아쉬운 때가 없지는 않으나 지금은 햇살이 마냥 좋은 겨울이니까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며 자랑스럽다는 듯 지신의 품에 생명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 겨울에 우리 집 햇살마당에는 아직 꽃이 피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얼지 않게 최대한 키를 낮춰 거의 땅에 붙어서 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으니까, 참을 만하니까 꽃은 피는 것 일터이고 꽃뿐만이 아니라 온갖 풀이 납작 땅에 들어붙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햇살마당을 나만 혹은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저 풀과 꽃들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자기들의 세상이 오면 얼마나 많은 씨앗을 뿌려 나를 고단하게 하겠지만 그것은 당장 닥칠 일이 아니니까 괜히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고 이 혹독하고 삭막한 겨울에도 씩씩하게 버티는 그 생명들이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아니 고맙기조차 합니다.

그 모두가 다 포근한 햇살마당 덕분입니다. 마당가에는 늙은 감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높은 가지에 까치밥으로 남긴 몇 안 되는 홍시는 서리를 맞아 말갛습니다. 그 덕분인지 까치 떼와 물까치 떼의 먹이 다툼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해서 이긴 무리가 감나무를 차지는 했으나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먹이를 따 먹는 것도 쉽지 않아 온갖 재주를 부려보지만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흔들리는 자신의 몸으로 중심을 잡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합니다.

그러나 요행히도 자신의 부리로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다행이고 어쩌자고 그 고난도 기술이 빗나가 마당에 ‘뚝’ 하고 떨어지고 말아서 애석함이 말로는 부족할 정도인데, 마당으로 직행한 홍시도 땅 풀과 땅 꽃인 양 마당에 깔리듯이 몸을 낮춥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홍시가 떨어진 곳으로 쫓아가 보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입니다. 이미 마당의 일부가 되기로 처음부터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게 한 자리 차지하고는 태연합니다. 일이 없어진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이미 땅이 되고자 작정한 홍시 한 번 바라보고 그것이 원래 있었던 자리 한 번 쳐다보는데 이미 까치는 가버린 후입니다.

나만 미련이 남은 건가. 그토록 힘겹게 작업한 먹이가 눈앞에서 땅으로 떨어졌는데 마당으로 내려와서 조금이라도 먹지 하는 세속적인 아쉬움이 이는 동안 마당으로 비추는 햇살은 이미 그 몸을 꾸덕꾸덕하게 말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빨리 마당의 일부로 만들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우리 집 햇살마당은 음직이지는 않지만 아침부터 찾아 온 햇살과 뭇 생명으로 인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장인 것입니다. 참 고마운 공간인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해가 있는 것은 아니라 특히 요즘 같은 혹독한 겨울에는 흐린 날이 자주 있어 그런 날은 괜히 마음이 환해지지 않아 자꾸 자꾸 하늘만 쳐다보는 일이 잦아집니다. 그런 날은 하는 수 없이 집 안에서 생활하지만 잠시라도 햇살이 비추면 문이라도 얼른 열고 봅니다.

지난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직전 고추나무를 뽑고 상추와 고수 씨앗을 뿌리고는 이렇게 추운데 싹을 튀울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예쁘게 싹이 나와 주었고 마당에 오는 햇살을 나눠 받으며 그 와중에도 조금씩 몸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보며 감탄해하고 감사해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 햇살마당이 자랑스럽습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