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꾸준히 듣고 경제 주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부산 출신의 벤처기업 대표가 최근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가 운영하는 기업은 제법 규모가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지 10년이 다 돼 간다.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경기 판교에 꽤 근사한 사옥도 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정부가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현장과는 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혈세 투입형’이 아니라 ‘현장 밀착형’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오판이었다. 그가 한 말은 업계 전반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토로였고, 동시에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그를 만난 시점은 2기 경제팀의 ‘원톱’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지난 4일)한 직후였다.

홍 부총리를 ‘원톱’으로 한 2기 경제팀이 공식 출범했다. 규제 완화 등에 목이 마른 기업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2기 경제팀은 지난 4일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굵직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경제활력 제고에 총력을 쏟겠다는 의지가 담겼고, 지난 18일 발표된 제조업 활력 대책에는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살리기 위해 2기 경제팀이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기업이 정부를 향해 끊임없이 요구하는 ‘애로사항 청취’도 이전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홍 부총리의 취임 전 행보도 그렇다. 기재부에 따르면 그는 부총리로 내정된 지난달 9일부터 취임 직전까지 ‘후보자’ 자격으로 비공식 현장 방문을 상당수 진행했다. 인사청문회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에는 복수의 민간 전문가를 만나 대내외 리스크 요인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지난달 말에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서울의 한 시내버스 첫 차에 올라 계약직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상 버스 첫 차에는 환경 미화원과 일용직 근로자 등이 많이 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제 수장으로서 현장을 방문해 국민의 어려움을 파악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과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 등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는 현장 행보의 지속성과 비수도권 지원 강화다.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듣겠다는 홍 부총리의 ‘약속’과 내정 이후 한 달 넘게 진행된 현장 행보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그에 따른 결과도 ‘백화점식’ 대책 발표가 아니라 경제 주체가 필요로 하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역 경기가 상대적으로 더 침체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수도권에 중점을 두고 현장 행보를 이어가거나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조선·자동차 대책을 최근 잇달아 발표했지만 이들 대책으로 위기가 말끔히 해소되긴 만무하다. 비수도권을 향한 정부의 지속적인 애로사항 청취와 후속 대책 등이 뒤따라야 한다.

앞서 언급한 벤처기업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절반은 비수도권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소위 ‘잘나가는’ 소수의 벤처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방 분권 의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강한 만큼 비수도권 경제를 육성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지원해야 합니다.”

서울본부 경제부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