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물대포에 맞서 부지런히 보도블록을 깨서 던지는 군중. TV 화면은 익숙하다. 여느 시위와 다르다면 대부분 형광색 조끼를 입었다는 점. 개미떼처럼 작게 비춘 군중의 이름은 ‘노란 조끼’다. 덕분에 모든 자동차는 형광 조끼를 비치하도록 프랑스 정부가 의무를 지웠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지난달 17일 프랑스 남서부의 보르도에서 유류세 인상을 항의하며 시작한 운수업 종사자 중심의 시위가 한 달 넘게 프랑스의 모든 사회적 불만을 터트리는 대규모 사태로 번진 양상이다.

여러 차례 올린 유류세를 다시 올리겠다는 정부는 이미 담뱃값에 매긴 간접세도 올렸고 최저임금도 묶고 집세 인상도 용인하고 전기·가스 요금 등의 세금도 인상할 계획이었다. 한편 부유세를 폐지했고 고소득자의 소득세도 깎아주었다. 최초의 시위로부터 열흘 뒤 대통령은 노란 조끼를 ‘파괴와 무질서 자체를 원하는 자들’이라 부르며 양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4차 시위 이후 조금 물러서긴 했지만 정책과 대책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어쩌다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공산당선언’에 비길 만한 ‘반란의 조짐’은 우리말로 나온 직후에 읽었다. 2007년 프랑스 초판이 2011년 번역본으로 나왔으니 꽤나 빠르게 퍼진 셈이다. 

‘테러리즘의 매뉴얼’(당시 프랑스 내무부 장관)이나 ‘권력이 두려워하는 책’(르몽드)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2009년 영역본이 아마존 판매 1위에 등극하며 ‘반물신주의 선언이자 혁명의 매뉴얼’(뉴욕타임스) ‘내가 읽어본 가장 사악한 책’(글렌 벡) 같은 수식어가 붙을 만큼 반응은 뜨거웠으다. 노란 조끼로 이어지는 최근 십여 년의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분에게 책은 몹시 요긴하지 싶다.

미래의 독자가 아닌 분들을 위해 내용을 소개하겠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고 ‘일곱 개의 동심원’으로 명명한 전반부는 현실 인식이다. 자아, 관계, 노동, 도시화, 경제, 환경, 문명이라는 현대 사회의 상황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분석은 신랄하고 냉소적이다. 미지근한 개혁으로 병든 사회와 말살된 인간성 회복은 어림없고 해체는 불가피하다는 전망. ‘반란’이란 제목을 붙인 후반부는 현존하는 조직을 거부하고 체제 밖에서 힘을 길러 코뮌 내지 개별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형성하자고 호소하는 동시에, 결정적 순간 자본주의를 박살내는 공격을 감행하자는 선언을 담았다.

지은이가 궁금하지만 그저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고 서명되었을 뿐이라서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사실 나나 당신, 어쩌면 내 옆이나 당신 옆에 있는 이들일 수도 있겠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모든 것이 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모두 꽉 막혀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틀림없는데 반응이 꼭 같지 만은 않다. 최근 유행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도 그런 축에 들텐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위화감은 틀림없이 그의 든든한 독자층이 느꼈을 공감과 동떨어졌을 테다. 이어 소확행을 살짝 비튼 ‘소확횡’ 곧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바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 병중의 시인도 일찍이 갈파한 적이 있는 ‘쓸쓸한 사람들’의 자그마한 장난이 아닌가 싶었다.

힘없는 이들의 소극적인 저항이 이대로 그치고 만다면 부정적인 계기인 그대로 스러지고 말텐데, 그것은 가슴 아파하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담사동의 말, ‘살짝 빛깔을 내비치던 가을 꽃봉오리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 가을 봉오리는 힘없이 이울고 만다’(花氣微醒 秋心零落)에 가서 닿는다. 영락(零落), 힘없이 이울고 만다는 말은 다시 ‘가을 마음은 쓸쓸하다’라고 읽으면서 말이다.

뒤늦지 않다면 그것은 후회가 아니겠지만 반격은 조용히, 때론 왁자지껄 다가오는 중이다. 소확행이든 반란이든 어차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니체는 선악 개념을 설명하면서 ‘선함’은 힘차다는 느낌이자 힘을 향한 의지이고 ‘나쁨’은 나약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갈구하는 ‘행복’은 힘이 성장하고 저항이 극복되는 느낌, 곧 무기력을 벗어나는 과정이며 노예는 가질 수 없는, 따라서 주인 된 자라야만 가능하리라는 예언이 뒤따른다. 그래서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도 저주하지도 말기로 했다. 저주는 무엇보다 말과 사물의 관계가 헐거워졌음을 승인하는 것이고 힘의 반대쪽인 소극적 저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