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캐럴송이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를 터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에 울려 퍼지는 노래 가운데 ‘루돌프 사슴 코’는 과장을 조금 보태 ‘국민 캐럴송’이라 해도 될 듯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원제는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루돌프 빨간 코의 순록)’로 1949년 미국 가수 진 오트리가 불러 대표적인 캐럴송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래 제목으로 인해 루돌프를 대체로 사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자면 루돌프는 사슴과에 속하는 순록이다. 주로 시베리아와 북유럽, 알래스카, 캐나다 등지에 산다. 암수가 모두 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사슴과 구별된다.

캐럴송 ‘루돌프 사슴 코’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과학자들은 노래 가사가 진실인지를 규명하는 작업까지 했다. 예컨대 순록의 코가 진짜로 반짝이는지 의문을 풀어보자는 식이다. 물론 코에서는 빛이 나지 않았다. 다만 코가 다른 동물보다 유난히 붉은 것은 사실이었다. 극한의 추위를 잘 견딜 수 있도록 모세혈관이 코에 집중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동물과 마찬가지로 순록도 국제자연보호연합이 지정한 멸종 위기종이다. 20여 년 전 500여만 마리였던 순록은 지금 210만 마리 안팎으로 줄었다. 그나마 생존한 성체 순록의 몸무게도 예년에 비해 갈수록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순록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다. 북극권의 기온 상승으로 순록의 주요 섭취물인 이끼류가 점차 사라지는 데다 눈 대신 비가 자주 오면서 지표면이 얼음으로 덮이는 바람에 먹이를 찾는 일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3년과 2014년에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순록 6만1000여 마리가 굶어죽은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 바도 있다.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극심한 환경변화는 이런 동심의 바탕이 되는 세계까지 파괴하고 있다. 특별한 대처가 없다면 수십 년 내에 순록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노랫말 가사처럼 ‘길이길이 기억됐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루돌프의 슬픈 현실이 안타깝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