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 사람 화씨는 산골짜기에서 찾은 옥구슬을 왕에게 바쳤다. 그런데 ‘옥구슬이 아니라 돌’이라는 왕 측근의 모함을 받고 왼발이 잘렸다. 그 뒤 즉위한 왕에게 옥구슬을 다시 올렸지만 이번에는 오른발을 잃고 말았다. 다른 왕이 권좌에 오르자 화씨는 사흘 밤낮을 슬피 울었다. 왕이 사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발이 베인 걸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저의 보배인 구슬을 돌이라 부르고, 정직한 선비에게 누명을 씌운 걸 슬퍼할 따름입니다.”

중국 고사성어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화씨지벽(和氏之璧 ) 이야기다. 화씨의 집념에 감탄한 왕이 그 구슬을 다듬어 보옥으로 삼고 ‘화씨의 옥구슬’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난관도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비유한다. 진실을 알리고 지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그제 ‘2018 올해의 인물’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언론자유와 진실을 수호하다 숨지거나 탄압받은 언론인들, 이른바 ‘수호자들과 진실에 대한 전쟁(guardians and the war on truth)’이다. 여기에는 지난 10월 살해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슈끄지, 두테르테 정권의 인권 탄압에 맞선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취재하다 감옥에 갇힌 로이터통신 기자 등이 포함됐다. 비유하자면 화씨의 후예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정상회담 중개 역할로 올해 최종후보 10명(단체 포함)에 들었다. 2016년 대선에 승리하며 ‘올해의 인물’이 됐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년 연속 그 후보 명단에 올랐다. 반면, 지난 6월 트럼프와 세기의 담판을 벌였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핵·미사일 실험 도발, 트럼프와의 살벌한 ‘말 전쟁’으로 올해의 인물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1993년에는 앙숙지간이던 4명이 ‘평화수호자’란 이름으로 올해의 인물에 뽑혀 주목받았다. 당시 중동평화를 이끈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남아공 인종차별정책 폐지에 기여한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과 클라크 대통령이 그들이다. 내년이나 2020년에는 남북한 정상 등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