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아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고 출소를 2년 앞둔 시점에서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측이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해 또다시 심신미약자의 감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그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변별능력은 시비나 선악을 구별해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는 능력이고, 의사능력은 가벌행위를 피하고 별도의 행위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심신미약은 의학적으로 생소한 용어여서 그 개념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판단 자체가 주관적이다. 따라서 심신미약은 사법적 현실에서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물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은 고도의 정신 능력이다. 심신미약은 이러한 정신 능력에 부분적인 제한이 따른다는 뜻이다. 의학에서 정상이란 건강하다는 의미다. 정신의학에서는 성격의 여러 요소가 최상의 조화를 이뤄 갈등 없이 욕구 충족을 맛보며 사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건강한 정상인으로 간주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의미의 정상이란 우리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서 끊임 없는 인격 도야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이상적인 목표일뿐이라고 했다. 이론적으로는 온전히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심신미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일까. 형법에서 범법행위가 범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의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행위가 법조문에 저촉돼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정당행위이거나 정당방위라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는 한 위법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는다. 행위의 시비나 선악에 대한 판단 능력과 관련된 책임성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의 주관성에 관련된다. 따라서 심신장애는 오로지 책임성에 관련된다. 법률적 개념인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은 행위의 책임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론에서는 이러한 책임성을 형벌 능력 또는 형벌적응성이라고 보는 한편 도덕적 책임론에서는 비난가능성으로 본다. 비난가능성은 행위자를 비난할 수 있고, 행위자가 비난을 받을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형벌은 일종의 도덕적 비난으로서 행위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사회적 지위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정신질환은 치료를 통해 증상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만으로 정신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물 변별능력과 의사 결정능력은 지속적 특성이 아닌 행위 순간의 능력을 의미한다. 즉, 정신의학적으로는 지속적인 미약자일지라도 형법상으로는 행위 순간의 상황(능력)을 문제 삼는다. 따라서 범법행위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더라도 범행 당시의 정신 상태에 근거해 행위의 책임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신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정신병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을지라도 치료로 증상이 잘 통제되고 있으면 변별능력이나 의사능력과 같은 정신 능력의 제한은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범법행위자의 책임능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재판장의 권한이다. 이 때문에 재판장은 범법행위자의 심신미약을 판단함에 있어서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선진국에 비해 심하다. 정신보건시설은 혐오 시설로 간주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은 정신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저하시킨다. 그럼에도 정신질환이 종종 책임성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정신질환은 특성상 진단에 필요한 객관적 지표가 부족하고 주관적 판단이 많이 작용해 타 질환에 비해 병황을 가장하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경 대상의 심신미약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지만, 심신미약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여론에 떠밀려 당연히 받아야 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87%는 심신미약의 감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가 심신미약의 오·남용에 따른 사법적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반영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죄는 미워해도 인간을 미워하지는 마라.

부산대 의전원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