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다. 1789년 대혁명은 암흑시대를 종식시켰다. 중세 유럽 봉건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때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공표됐다. 혁명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 사람 중심의 자유와 평등 사상을 심어줬다.

이런 혁명의 나라가 요즘 ‘노란 조끼’ 시위로 한 달 가까이 몸살을 앓고 있다. ‘노란 조끼’는 운전자가 사고를 대비해 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형광 노란 조끼를 집회 참가자들이 입고 나온 데서 붙여졌다. 시위는 거의 폭동 수준이다.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 중심가에서 벌어진 시위는 폭력 방화 약탈로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생까지 가세하면서 국가적 위기란 말까지 나온다.

아이러니하게 대혁명 상징인 ‘마리안’ 조각상의 얼굴 부분이 시위로 부서졌다. 개선문 안쪽에 있는 마리안은 대혁명 당시 자유의 가치를 상징하는 가공인물이다. 1848년 ‘2월 혁명’ 당시 마리안상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물로 정해졌다. 19세기 말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선물로 보낸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마리안상의 일종이다. 이런 의미의 마리안상이 시위로 파손된 걸 본 프랑스인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리안상만이 아니다. 개선문 안 나폴레옹 두상의 목이 잘려 나뒹굴고 19세기 제작된 부조 작품도 파괴됐다. 개선문은 ‘노란 조끼가 승리할 것’ ‘우리가 깨어나고 있다’ 등의 낙서로 얼룩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불관용’을 천명하고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 하지만 시위가 잦아들지는 모르겠다. 발단이 유류세 인상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정부는 기름값 인상으로 차량 운행을 억제하기 위해 올해 경유와 휘발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각각 23%와 15% 인상했다. 대기 오염을 줄이는 배기가스 저감 정책의 일환이다. 내년에는 3~5% 추가 인상할 방침이다.

이에 생활 여건상 차를 운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반발했다. 유류세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인식이다. “당장 식비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환경 이야기를 하고 태양열 패널과 전기차를 사라고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대도시 외곽이나 중소 도시, 농촌 지역 등 대중교통이 열악한 주민 반발이 특히 심했다. 여기에 규제와 조세 부담 완화 등 마크롱의 친기업 정책은 시위가 폭동 수준으로 격화하는 데 한몫했다. 역시 밥보다 중요한 이념은 없는 것 같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