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문화축제 점등식을 하던 날 모퉁이극장에선 관객영화제의 문을 열었다. 2015년부터 매년 이맘때 열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영화제다. 모퉁이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알고 있을 테지만 관객영화제가 어떤 취지로 탄생했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것 같다. 지면을 통해 벌써 4년이 된 작은 영화제를 소개해보려 한다.
관객영화제의 큰 특징은 관객이 영화제의 주체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영화제를 만드는 주체가 시민이라는 점과 관객으로 참여하는 이들 또한 시민이라는 점이다. 얼핏 같은 말 같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우선 관객영화제는 모퉁이극장의 관객문화교실을 수료하고 수년 동안 관객운동을 펼쳐온 시민과 관객영화제 기간 중 활동가로 지원해 현장운영 워크숍을 거친 관객활동가들이 영화제 운영 주체로 활약한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 다수도 적극적인 시민활동가라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을 펴는 이들뿐 아니라 사회곳곳의 변화를 희망하며 사회참여의 장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이들이 관객영화제를 찾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전시, 공연, 독서모임 등 문화 활동을 이어가며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관객영화제의 목적 중 하나는 영화제의 주체가 되고 싶은 관객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제를 통해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 참여하는 이의 수는 50여 명에 달하고 대다수는 매년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관객영화제를 만드는 이들 관객활동가는 전문 영화제 스태프가 아니다. 그럼에도 관객영화제를 만드는 데 있어서만큼은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시민이 만나고 어울려 교류하는 문화를 만드는 주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객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모객 수나 홍보 실적, 프로그램 편수와 같은 기존 영화제의 평가 기준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영화제를 처음 찾은 관객을 응원하는 이들의 정성 어린 활동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야만 알 수 있다.
일반영화제의 스태프는 각자 맡은 업무에 집중하느라 영화제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영화제에서 활동가와 함께 만들어가려는 문화는 우리가 영화제를 만드는 실무에만 머무르지 않고 향유하는 관객으로도 온전히 활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영화제를 만드는 50여 명의 관객은 곧 영화제의 관객이기도 하다. 시민은 영화제의 스태프, 특강자, 공연자, 진행자로 각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으로서 활약한다. 영화제 상영작들을 함께 보고 토크시간에는 소감 한 토막을 나눈다. 여기에는 공동체적 영화 향유문화를 지향하는 관객영화제의 운동성과 더불어 만드는 이와 누리는 이의 간극을 좁혀 영화제를 만드는 것과 즐기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관객이 게스트라는 구호 역시 영화제의 정체성을 담는다. 시민 축제라는 행사에 가보면 시민보다는 명사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관객영화제는 이 관성을 깨려고 한다. 관객영화제를 찾는 이유가 사회적 명사를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만든 영화제를 체험하고 이들이 일궈가는 관객문화의 현장을 응원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관객영화제가 유명인을 일부러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권 의식 없이 시민과 수평하게 교류하려는 의지를 가진 유명인이라면 더욱 좋다.
관객영화제의 파트너들은 내빈이 아니라 영화제 진행자가 되어 영화제를 만드는 데 동참한다. 그리고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며 함께 성장할 것을 목표로 두터운 교류를 이어간다. 함께 주고받는 것이 즉각적인 거래로 수렴되고 이기적인 문화가 만연한 이 시대에 잊혀져가는 가치로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기다리고 지켜봐줄 수 있는 상호신뢰의 관계를 만들고 싶다.
개막식에 수백 명, 수천 명이 참석하는 영화제가 많지만 이들이 영화제 기간 관객으로 다시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관객영화제 개막식에는 80여 명이 자리했다. 이 중 다수는 영화와 관객을 보기 위해 모퉁이극장을 찾고 어느새 서로 친근한 영화친구가 된다. 만남을 통해 함께 섞이고, 기여하고, 얻어가며 관객이 만들어내는 이 현장의 기운이 8일간의 대장정 동안 이어져 작지만 알찬 영화제라는 꿈을 이뤄낸다.
모퉁이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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