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1905~1980)가 말한 ‘자유의 비극’에 대한 글을 소개한 대목에서 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 기억난다. ‘어린 두 아들을 둔 엄마가 케이크를 하나만 만들었다. 그랬더니 두 아들은 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툰다. 이를 본 엄마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틀림없는 해결책을 내어서 둘 다 불만이 없도록 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한다. 네가 형이니 이 케이크를 두 조각으로 똑같은 크기로 나누렴, 그런 다음에는 동생인 네가 먼저 고르면 어떨까 해서 형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똑같은 크기로 나누려고 기를 쓴다’. 여기서 형은 자를 권리, 동생은 고를 권리를 가졌으니 둘 다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설령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대체로 이런 방식의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법을 만드는 기관(케이크를 자를 권리)과 법을 집행하는 기관(케이크를 고른)으로 분리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대적으로 법을 만드는 기관의 권한이 막강하거나 비중이 크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먼저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집단이 혜택을 볼 수밖에 없으니 이 제도가 이상적이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보편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불만을 품을 수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유의 제도적인 제한이 필요하다. ‘자유’라는 의미가 정치적 의미(Liberty)도 있지만 ‘공짜(Freedom)’라는 뜻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공짜 복지 혜택을 받으려는 풍조가 만연하다. 즉 복지=공짜라는 인식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

루소(1712~1778)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이지만 가는 곳마다 족쇄로 매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도 실은 그들 이상으로 노예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는 알 수 없다. 무엇이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사회계약론)”고 하였다. 자연 상태는 가장 인간적인 상태다. 사회 상태로 옮겨가면서 이 상태는 한층 발전한다. 루소는 국민 주권론, 사회계약론, 일반의지론으로 국민이 주권자가 되고 국민의 일반의지에 의하여 결정된 ‘사회계약’이 기조를 이룬 자유와 평등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사회 상태를 구상하였다. 사회상태의 인간은 정의, 선악, 양심, 이성상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여기서 페스탈로치(1746~1827)는 이 이론을 발전시켜 교육론(도덕적 상태)을 내놓았다. 그는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서 교육을 통해서 참된 자연인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럼으로 사회적 인간으로서 편견과 오류에 의해 속박되지 않아야 한다. 자연적 상태에서 사회적 상태로 가면 이기심으로 자극된 폭력적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는 상태가 된다”고 했다. 페스탈로치는 또 “법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적 행위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인간 내면의 욕구까지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사회적 협약은 강자에게 유리하게, 법으로 허울 좋게 체계화되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국가체제로 변질되는 위험요소가 있다”고 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자적인 개인 행위에 대하여 책임지는 내면적인 소양을 최종적으로 요구했다.

서구 유럽의 복지는 젊을 때 세금을 많이 내어 노년기에 혜택을 받는 제도이기에 다수가 수용한다. 우리처럼 연령 제한 없이 모든 사람에게(청년수당, 일자리 수당 등) 주다 보면 복지정책이 버겁다. 불황기에 이런 것을 억지로 마련하다보니(정치적 계산) 받는 입장에서는 당연시한다. 모두가 행복의 기준을 물질 추구에 둔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목적을 정신적인 기준인 에우다이모니아(eudimonia)에 두었다. 이성이 목적이어야지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구적 이성은 이성을 왜곡하고 자아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집단 이기주의로 나간다.

최근 민주노총의 집단행동은 그 도를 넘어 정부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일부 사립유치원은 국고 지원을 사용화(私用化)하는 비리로 지탄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하지만 국가 측면에서 보면 ‘도구적 이성’에 불과하다. 케이크를 자르는 권력을 가진 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자연과 사회를 힘으로 억누르고 지배하려는 것으로, 집단 파업이나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모든 사회단체가 집단 이기주의와 폭력 행위를 자유라고 생각하는 ‘도구적 이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평화로운 사회가 된다. 페스탈로치는 “마을에 홍수가 나서야 조림사업을 하고 다리를 놓는 사람이 정치인이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일이 터지고 나서 뒷감당하면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남명학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