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오래된 집을 사서 그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으면서 많은 체험을 했다. 그 체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몇 달을 두고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다가도 결국 근본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것을 자연이라고 했다. 막히면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넘치면 원래 막혔던 곳을 뚫어주어야 한다. 늘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 욕망은 좀 더 덧칠을 하고 꿰매고 꾸미려는 데서 나온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을까 하는 생각들이 근본을 흔들게 한다. 혼자서 고민하기를 여러 차례 하거나 어떨 때는 그 생각에 빠져서 종일 꾸미려는 생각의 늪에서 헤매기도 한다.

이규보는 생각의 꼬투리가 길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사잠(思箴)을 지어서 끝없는 생각의 갈무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생각하되 너무 급히 하지 말라/ 너무 급히 생각하면 어긋남이 많아진다/ 생각하되 너무 깊이 하지 말라/ 너무 깊게 생각하면 의심이 많아진다/ 헤아려서 절충해보건대/ 세 번 정도 생각해보는 게 가장 적절하다”라고 했다. 세 번 이상 생각을 하면 번민에 빠지게 되고 생각이 너무 깊어지면 병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생각의 꼬투리를 잘 갈무리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너무 깊이 그 생각에 빠지다보면 병을 얻게 되고, 너무 성글게 생각을 하면 실수를 해서 두 번 세 번 후회를 하게 된다. 그는 일의 정도에 있어서 차이야 있겠지만 한 가지 일을 세 번 정도는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규보가 말한 이 세 번이 도달하는 자리는 결국 근본의 자리이다. 여러 차례 생각을 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더라도 결국에는 근본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집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는 담장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다. 요즘 유행하듯이 예쁜 펜스로 막을까, 다른 전원주택과 같이 멋진 담장을 쌓을까. 그러나 다른 자리에 놓인 집들은 그 집의 자리에 따라서 알맞게 펜스를 치기도 하고, 예쁜 담장을 쌓기도 했다. 그 담장은 각자의 집터 자리에 놓인 주변 환경에 어울리게 만들었다. 가장 좋은 담장을 쌓는 것은 예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사람이 만들었던 담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집을 허물기 전의 옛집은 담장을 벽돌로 쌓아서 집안의 가름막으로 삼았다. 그 담장은 어른의 어깨 정도의 높이였다. 그러면서 담장의 바깥으로부터 집안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게 했다.

담장을 쌓는 것은 안과 바깥의 경계를 두는 일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안을 넓게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사소한 담장 하나에도 오래된 근본 원리가 있다. 담장을 허물어서 안과 바깥의 경계를 없애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담장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으면 안이 답답하게 보이고, 지나치게 낮으면 안과 바깥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이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것은 근본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막히고 답답할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진리가 있고 원리가 숨겨져 있다.

‘주역’에서 비(賁)는 장식을 말한다. 비의 괘는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장식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상의 모든 이치는 부드러움과 강함이 교차되는데 이것은 하늘의 무늬인 천문이고, 그 교차되는 무늬의 밝음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사람의 무늬인 인문(人文)이다. 비(賁)는 천문의 운행으로 때를 관찰하고 문화로써 천하를 교화하는 것을 이르는 괘이다. 이 때문에 ‘주역’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지나친 화려함이 아니라, 그 바탕이 순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순수함은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무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순수한 자리를 깨닫는 것을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사람살이에서 근본을 잃지 않는 것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유협은 ‘문심조룡’에서 인간의 근본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무늬는 그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세우는 데 있다고 했다. 마음이 놓인 자리에서 사물의 자리를 헤아릴 수 있고, 무엇을 말하려고 할 때는 마음으로 결정한 후에 할 수 있으며, 이치를 바르게 세우고 난 뒤에 표현을 해야 아름다운 무늬를 펼쳐 놓을 수 있다고 했다. 꾸미는 말이 근본을 덮어버리면 가식이 되고, 근본을 잃고 생각을 하면 망상이 되기 싶다. ‘대학’에서 참된 앎을 이르게 하는 것은 사물의 자리를 아는 데 있다고 했다. 사물의 자리를 통해서 그 이치를 아는 것은 ‘대학’에서 말하는 모든 학문의 기본 원리이다. 참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물의 근본 이치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막히면 그곳을 뚫어내는 것이 현대에서 말하는 도전의 처세술이라고 한다면, 막히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동양의 처세술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