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사는 동네인 부산 남구 남천동의 빵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 ‘빵천동’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지도도 만들어지고, 구청에서 만든 입간판도 여러 군데 섰다. 모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집중 소개되며 인기 가도를 타더니 주말에는 빵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친다. 빵천동만 그런 건 아니다. 방송사마다 먹는 것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두세 개가 있고, ‘맛집’으로 소개된 집 앞에는 몇 시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넷 방송 중 ‘먹방’은 인기 채널이다. 자극적이고 희귀한 음식일수록 그 채널은 인기가 있다. 한 먹방 유튜버는 방송으로 1년에 10억을 번다고 한다.
먹방은 전 세계에 퍼진 한국발 콘텐츠다. 유독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 먹는 장면이 많다. 화가 나면 많이 먹고, 슬프면 궁상맞게 먹는다. 어색하면 어색함을 깨기 위해 먹는다. 먹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남이 먹는 것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이 특이한 현상을 보며 우리나라가 다채로운 재료로 수많은 요리법을 갖고 있어 이런 특유의 문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오로지 먹기만 하는 먹방은 불편하다. 그 방송을 하는 이유도, 왜 보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먹고 싶은데 다 먹을 수는 없으니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말도, 너무 바빠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신적 허기를 채우는 것이라는 말도 완벽히 이 문화를 이해하기는 부족했다. 그것 역시 개인의 취향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본의 저널리스트 헨미 요가 전 세계의 먹는 문화를 소개한 ‘먹는 인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남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다가 씻어 먹고, 탄광에서 석탄을 뒤집어 쓴 채 주먹밥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처럼 먹는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얇은 옷 한 겹 입힌 아이에게 거짓 구걸을 시키는 러시아 한 가정의 식사도 있고, 음식 재료와 먹는 사람의 모습이 차표 등급별로 달라지는 베트남 기차 안에서의 식사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위안부 생활을 할 때 먹었던 음식이 소개돼 있다. 그 기억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토록 비참한 식사가 또 있을까. 그 고통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어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헨미 요가 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그는 모든 인간이 먹는다는 점에 착안,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고 무엇을 먹고 있는가. 그것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역사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 그리고 이 시대의 희로애락이 보인다. 또 책의 부제처럼 ‘식과 생의 숭고함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이 책을 함께 읽은 15세의 소년이 먹방 문화가 불편한 이유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에 열광하는 모습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한 장면 같다는 것이다. 어떤 장애물을 만날지, 어떤 절벽으로 떨어질지, 주변을 살피지 않고 그저 그 아름다운 소리에만 따라가는 모습이 위태롭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먹방을 보면서 주변을 살피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한 끼 식사를 할 수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11%인 8억1500만 명(UN 2017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상태보고서)이나 되는 오늘날, 많은 양을 맛있게, 자극적으로 먹는 것을 과연 개인의 취향이라 말해도 괜찮은 걸까.
모든 인간은 먹는다. 그러므로 이 행위에는 보편적인 윤리의 수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고, 적당히 먹을 수 있으며, 자신의 존엄함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려지는 음식은 없어야 하고, 조작되거나 변형된 식품이 있거나 재료가 비윤리적으로 생산되지도 않아야 한다. 먹는 인간에 대한 사유는 존엄한 삶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 빵 냄새와 맛에만 쫓아갈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얼굴로 누구와 함께 어떻게 만들어진 빵을 먹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그것에 인간다운 삶의 길이 있을 것이다.
인디고잉 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