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분권 국회 대토론회’. 이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에 대해 국회와 정부가 팔다리 하나를 잘라낸다는 심정으로 결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자신의 팔다리 하나를 잘라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런데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방이 살아야 중앙도 살 수 있는 까닭이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재정분권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안은 오는 2022년까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 8 대 2에서 74 대 26(2020년까지)을 거쳐 7 대 3으로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현행 11%인 지방소비세율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10%포인트 올리는 방안이 담겼다. 또 주민투표 활성화 방안을 포함해 지방자치권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도 함께 발표했다. 무엇보다 1988년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지방자치법을 30년 만에 전면 손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는 않다. 해묵은 숙제였던 지방의회의 정책보좌관제 도입, 경남 창원시 등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대한 ‘특례시’ 지정 등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번 1단계(2019~2020년) 정부안에서는 ‘팔다리를 자르는 심정’이 와 닿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2년6개월 만에 등 떼밀리듯 내놓은 인상이 더 짙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성결대 라휘문 행정학부 교수의 논거에 따르면 이번 정부안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안의 전면 수정·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먼저 ‘장기적으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국세 대 지방세 = 6 대 4’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6 대 4’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지방세 52조 원을 확충해야 하는데, 발표 내용 중 1단계만 따지면 8조4000억 원에 그친다. 정부안의 ‘2단계’(2021~2022년)까지 고려해도 총 20조4000억 원+α 수준이다. 여기서 +α가 30조 원이 아닐 것은 자명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단계 기간 지방재정 순증 효과 역시 3조7000억 원에 불과하다. 이 액수로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가 혜택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가뜩이나 세원과 세수 부족에 허덕이는 지방정부에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소득세의 10%에 해당하는 지방소득세 도입 내용은 이번 정부안에서 빠졌다. 2021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2단계에 지방소득세를 포함할지마저 다시 논의해야 할 판이다.

또 정부안은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할 때 생길 지역 간 재정 격차의 완화 방안을 담았지만, 지역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피하기 어렵다. 지방소비세 배분 비율을 현행(수도권 : 광역시 : 도=1 : 2 : 3)대로 유지하면서 소비가 발생하는 정도에 따라 지역별 가중치를 15% 적용하기로 했음에도 이것이 제구실을 할지 의문이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세금을 정하는 과세 자주권을 비롯해 기채 자율권에 관한 내용 역시 정부안에는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지방세라는 용어 역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가 직접 과세권을 행사해야 지방세라고 부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세’를 거둬들이고 있다. 개헌 없이 관련 법률 개정만으로 재정분권을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헌법상 지방정부는 ‘법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자치를 할 수 있다.

지방자치법 제9장을 ‘국가의 지도·감독’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로 바꾸는 등 중앙과 지방의 협력관계를 정립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지역 재정 책임과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통제 장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행정안전부의 표현대로 이번 정부안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현재진행형’이다. 내년부터 이뤄지는 2단계 추진 방안 논의 때 1단계에 서 지적됐던 사안들을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단계 추진 방안’에서는 지자체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내용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지방자치의날 기념식 당시 기념촬영 장면을 재생해보자. 문 대통령이 ‘중앙권력을 나누면’의 의미인 ‘÷’를,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주민 행복은 더해진다’의 뜻을 담은 ‘+’를, 그리고 정순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방의 역량이 배가된다’는 의미인 ‘×’를 들고 있다. 그렇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재정을 제대로 나누고, 더하고, 배가해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의 기틀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문 대통령의 약속인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녹음기처럼 틀어놓지는 않겠다. 재정분권 2단계 논의 과정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

편집국 부국장·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i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