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작은 행사다. 국비와 시비를 합친 예산이 부산비엔날레의 4분의 1,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달리 보면 큰 행사다. 무려 41개국에서 137명의 저명한 석학이 찾아온 행사이니까. 지난달 31일부터 부산에서 사흘 동안 열린 세계인문학포럼 이야기다. 필자는 부산지역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이 행사에 참여했다.
부산시, 교육부, 한국유네스코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한 이번 포럼은 역대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이었다. 이전에 해외 학자 20~30명이 강연자로 참여하던 것에 비해 올해는 국내와 해외 연사의 비율이 완전히 역전됐다. 그야말로 ‘국제적’이었다. 학술·문화를 통틀어 이처럼 말 그대로 국제적인 행사는 아주 드물다.
연사가 많은 만큼 각각의 강연시간이 짧아 내심 아쉬웠는데, 이것이 오히려 좋다는 의견도 있어 흥미로웠다. 짧은 시간에 세계 지성의 동향을 일람할 수 있으니 더 좋다는 거다. 인문학자가 아닌, 한 지인의 말인데, 일리가 있다. 이 포럼은 ‘국제단편영화제’ 같기도 하고 ‘지스타’ 같기도 하다. 쇼케이스를 보듯 일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파고들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들만의 리그’로 보인다고? 외국 석학들을 모시는 잔치인 것 같아 시민에게는 멀게 느껴진다고? 꼭 그렇진 않다. 포럼 속 ‘부산 세션’과 함께 다채로운 연계·부대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부산만이 이룬 작은 성공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월 부산지역 대학교 인문대 학장과 시민인문학단체가 모여 ‘부산지역추진위원회’를 만드는 한편, 3개 대학과 부산시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 결실이 부산 세션과 연계·부대행사다. 연계행사는 지난 3월부터 부산의 백년어서원, 인디고서원을 비롯해 16개 기관이 26개 인문학 행사를 진행했다.
본 행사인 포럼의 부산 세션은 유네스코 인문학 단장인 존 크라울리의 강연으로 시작했다. 유네스코 단장이 포럼에서 강연한 것은 이번 부산 세션이 처음이다. 내가 학생 시절 유네스코 잡지 ‘꾸리에’를 읽으며 유네스코의 역할을 알게 되고, 인문학 지식을 얻었다고 말하자, 한때 잡지 발행을 맡았던 단장은 활짝 웃었다. 현재 ‘꾸리에’는 온라인 잡지인데, 한글판은 1996년 발간이 중단됐다. 유네스코 창의도시인 부산시가 잡지 발간을 도우면 시민의 창의적 활동을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리란 생각이 든다.
이어 2부는 부산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도, 예술과 만나는 주제로 정했다. 부산 세션이 ‘부산학’으로 한정될 이유는 없다. 부산발(發)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번 발표자들은 그 실마리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부대행사인 ‘세계인문학영화제’도 그런 생각으로 진행했다.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감독 김영조)에서 부산 영도지역 역사와 주민 애환을 살핀 것은 부산학 차원이다. 등장인물들이 일터, 삶터를 상실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을 맞은 우리 모두의 문제란 인식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하는 것은 세계로 발신하는 부산발 메시지다.
덧붙여 한 가지. 좋은 그릇은 음식 맛을 더하는 법이다. 포럼과 부대행사를 수영구 문화재생공간 F1963과 해운대 영화의전당에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참석자 모두 찬사를 보냈다. 유네스코와 41개국의 석학들에게 멋진 부산 이미지를 선사했다.
이 점에서 첫날 기조강연을 한 이한구 교수의 말은 ‘뼈를 때리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 드리자 “아니, 오거돈 시장은 꼭 참석한다더니…”하고 말끝을 흐렸다.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아쉬움이 묻어났다.
부산시가 인문학 지원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물론 세계인문학포럼은 일회성 행사다. 그러나 이런 인문학 행사가 부산에서 열린다는 것은 분명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도시 품격을 높인다.
부산 세션과 연계·부대행사는 시민이 인문학을 가까이 접하는 기회를 넓혀준다. 시민의 관점에서나 도시 브랜드 가치의 관점에서나 가성비가 높다.
포럼이 부산에서 고정 개최되기 바란다. 포럼이 격년제로 열린다면, 내년에는 부산의 독자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좋겠다. 부산비엔날레가 바다미술제를 여는 것처럼. 부산이 세계인문학포럼을 연 것은 올해가 세 번째다. 부산만의 작은 성공이 나타나는 것 같다.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