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들어 올린 여장사 장미란, 탁구 여제 현정화, 펜싱의 전설 남현희. 한국스포츠 역사에 남을 스타들이다. 10년 전 이들을 포함한 여성 메달리스트 16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장이었던 A 씨를 IOC 위원 후보로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후보 추천 권한을 갖고 있던 대한체육회장에게 친필 서명과 추천서를 전달했다. 첫 여성체육인 IOC 위원이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이 부풀던 순간이었다. 대한체육회장은 첫 여성체육인 IOC 위원이 나오도록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후보 추천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내에는 IOC 위원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내로라하는 경제인에서부터 셀프 추천으로 하마평에 오른 체육인까지 모두 거물급 인사다. 최근 유승민 선수위원(2016년)을 빼고 IOC 집행위원회 1차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없다. 4대 메이저 스포츠대회를 모두 개최한 다섯 번째 국가이자 10대 스포츠 강국의 위상이 무색할 정도다. 현재 중국은 3명, 일본은 2명이다.

2013년 펜싱금메달리스트 출신의 토마스 바흐가 IOC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40개의 권고 사항인 ‘올림픽 어젠다 2020’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권고 사항이지만 바흐 위원장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실린 공약이다.

바흐 위원장이 내건 어젠다 중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분산 개최를 적극 권장한 1조와 스포츠에서의 양성평등 강화에 힘쓰겠다는 11조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바흐 위원장을 만나면서 한국인 출신 위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국제무대에서 IOC 위원의 중요성을 알고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IOC 집행위원회 1차 관문을 통과한 한국 사람은 없다.

최근 IOC 발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IOC 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총구성원 중 42.7%는 여성이다. 이는 2017년 대비 16.8%, 2013년 대비 98%가 증가한 수치로 바흐 위원장의 양성평등 실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양성평등이라는 거대한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남성만 밀었다. 체면을 구긴 것은 둘째 치고 IOC 입장에서 얼마나 우스웠을까 싶다.

1947년 첫 대한민국 IOC 위원이 탄생한 이후 IOC 위원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첫 IOC 위원은 이기붕 부통령이었다. 이어 농구선수 출신인 이상백, 김운용, 현 IOC 선수위원인 유승민 등 총 10명이다. 북한의 첫 IOC 위원은 작고한 김유순과 장웅뿐이다. 남북한 모두 전·현직 IOC 위원은 남성이다. 만약 문 대통령이 바흐 위원장에게 여성 체육인을 추천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1894년 창립 이후 첫 번째 여성 IOC 위원이 탄생한 지 37년이 흘렀다. 아직 한국 여성 중 IOC 위원 후보로 추천받은 사람은 없다.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 일까. 추천의 전권을 쥐고 있는 대한체육회가 추천한 적이 없어서 일까.

현재 전체 IOC 위원 103명 중 여성 위원은 32명이다. IOC 위원의 총정원은 115명이다. 12명만 채워지면 우리에게는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여성 후보를 추천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이 여성 후보를 추천한다면 IOC의 양성평등 실현에 적극 협조하고 앞장선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IOC는 공약을 실천하고 있다는 명분을, 우리는 첫 여성 IOC위원을 얻을 수 있다.

동서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