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사를 돈으로 따진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자본주의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한국에 설치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비용이 10억 달러(1조1300억 원)라는 말을 듣고 당장 철수해 (미 서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로 배치하라고 했다.” 지난 9일 공화당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그는 사드 비용을 강조하며 우리나라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을 다시 꺼냈다.

또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선 “우리는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고, 이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에는 “나는 한국에 이 군사게임(한미연합훈련)에 당신들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며 한미연합훈련에 철저히 돈 문제로 접근했다. 내년부터 새로 적용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지만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제껏 한미연합훈련에 돈 잣대를 들이댄 미국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측면에서 미 공화당의 주류인 네오콘(신보수주의)과 ‘힘이 정의’라는 신념은 공유해도 정치 스타일은 다르다. 네오콘은 돈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앞세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든, 네오콘이든 패권주의자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그건 ‘먹고사니즘’으로 귀속된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보듯, 국가 간 다툼은 결국 먹고사는 경제 문제라는 얘기다.

북한 역시 ‘먹고사니즘’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포기와 경제 올인을 선언한 건 그 고백이다. 북한의 핵 개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아 그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북미가 서로 상대에게서 경제적 유대의 필요성을 발견한다면 70년 적대와 반목을 얼마든지 끝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북한이 외국인 투자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며 “그게 바로 북미 대화가 잘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 데서 그 가능성을 본다. 지난 6월 말 그는 “북한은 부동산 입지 측면에서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며 “해변에 콘도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지난달 미국의 최대 곡물업체와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 광물업체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귀를 솔깃하게 한다.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여는 대북 투자의 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해서다. 북한은 세계적인 지하자원 부국이다. 북한의 원유 매장 가능성을 조사한 서양 기업들은 “상당한 매장량을 가진 유전이 여럿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일부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광물도 풍부하다. 금 7위, 철광석 10위, 아연 5위, 중석 4위, 희토류 6위, 마그네사이트 3위, 흑연 4위 등 주요 광물들의 매장량이 세계 10위권에 든다. 그 잠재가치가 40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니 외국기업들의 대북 투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의 금융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두 외국기업 관계자들의 방북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실세인 쿠슈너 선임고문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쿠슈너에게 대북 투자 검토를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외국기업, 특히 미국기업의 대북 투자는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 대북 제재 해제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원산이나 금강산 등 북한의 관광명소에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브랜드인 ‘트럼프 월드’가 들어선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김 위원장은 트럼프 월드의 안전한 투자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서둘러 비핵화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원활한 기업 활동과 투자이익을 확보하려고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에 적극 나설 터이다.

그러니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 보장·제재 해제를 교환하고자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북 투자로 이런 조치들을 촉진하는 발상 전환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북미관계 개선 또한 핵심은 동기 부여에 있다. 그 동기로는 경제협력 만한 게 없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투자를 골자로 한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를 시도해보길 바란다. 북미회담이 ‘톱다운(정상→실무진)’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합의하기도 용이하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자, 그게 북미가 바라는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일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