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탔다. 마감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취재원이 6시간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겨도 답이 없었다. 다른 취재원에게 전화했다. 그 역시 받지 않았다. 오전에는 ‘바빠서 그렇겠지’하고 생각했지만, 오후가 되니 마감의 압박 탓인지 화도 났다. 오후 3시께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이소연(여·22) 씨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 씨는 “깜박 잠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기차인데, 다른 친구 모두 뻗었단다. “서울에는 몇 시에 갔느냐”고 물으니 오전 5시 부산서 기차를 탔단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준비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거다.

만취한 박모(26) 씨가 운전한 BMW 승용차가 인도에 서 있던 군인 윤창호(22) 씨를 덮친 게 지난달 25일 새벽이었다. 20일이 넘도록 창호 씨 친구들은 동분서주했다. 창호 씨 친구들은 공강 시간, 수업 후 창호 씨가 누워 있는 해운대백병원에 모였다. 음주운전 사고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가칭 ‘윤창호법’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자료를 모으고, 판례를 분석했다. 음주 수치 어느 부분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지도 살폈다. 낮에는 지하 푸드코트 한쪽에서, 밤에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토론하고 법안을 만들어갔다. 새벽 두세 시까지 버티는 건 기본이었다.

강원 원주가 고향인 김민진(여·22) 씨는 아예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윤 씨와 같은 과인 고려대 행정학과 4학년 김 씨는 담당교수에게 “부산에서 윤창호법을 만들겠다”며 수업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부산에서는 주로 병원에 있고, 창호 씨나 다른 친구 집에서 짧은 잠을 잔다.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40여 개의 링거를 꽂고 사투를 벌이는 창호 씨에 비할 바가 아니다.

20대 청년 10명. 그들의 고군분투에 한국 사회가 응답하기 시작했다. 27만 명의 국민이 힘을 보탰고, 문재인 대통령도 창호 씨의 이름을 거론하며 “더는 우리 사회가 음주운전에 관대한 사회가 되면 안 된다”고 법 개정을 시사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창호 씨 친구 10명과 이들을 돕는 바른미래당 하태경(부산 해운대 갑) 의원은 국회의원 100명의 동의를 얻은 후 정식으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는 윤창호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다.

죽마고우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건 한순간이었다. 위안부 배지를 선물하며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도 없다’고 말했던 친구. 윤창호. 그의 뜻을 잇기 위해 발 벗고 나서 법안을 만들고 제안한 10명의 친구. ‘제2의 윤창호’를 막기 위해 이제 국회가 답을 할 차례다. 더불어 윤창호 씨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창호야 힘내라.

사회1부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