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주인공은 인력거꾼이다. 그날 따라 손님이 줄을 잇는다. 너무 운이 좋으니 오히려 불안해진다. 아내가 앓아누운 지 오래되었지만 약 한 첩 못 지어줬다. 그날 수입으로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서 갔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 소설은 당시 가난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1920년대 작가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빈처’에서도 소설가의 생활고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다른 돈벌이 수단 없이 글만 쓴다는 이른바 전업 작가들의 형편이 그때와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가들로서도 자존심 상하고, 괜히 작가가 되었다는 후회감 같은 것도 들 것이고. 아무튼 현진건식으로 말하면 정말 자신의 책이 복권에 걸리듯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운수나 기대하는 ‘운수 나쁜 날’만 계속되는 상황인 것이다.
A작가의 경우 지금 편의점 알바로 근근이 버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결혼도 못 해 가정도 자식도 없다. 소설만 믿고 있다가 어느덧 가난뱅이가 되었고, 가난뱅이에게 시집을 올 여자는 없고, 괴롭고 암담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장래가 유망한 작가였는데 그렇게 고달픈 인생이 될 줄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병이 들거나 나이가 더 들어 편의점 알바라도 못 하면 그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B작가는 비교적 젊은 작가이다. 그의 직업 경력은 거의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판이다. 심지어는 일본이고 중국에까지 돈 벌러 다닌 경력도 가지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많은 직장을 경험한 것도 아니요,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여러 직장을 전전한 것도 아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없다 보니 그만큼 고생을 한 것이다.
소설책이 팔리지 않는 것을 작가적 능력이나 열심히 쓰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은 정말 뭘 모르는 너무나 한가한 생각이다. 어쩌면 오늘날 전업 작가는 현진건의 빈처에 나오는 주인공보다 더 비참한 지경일지 모른다. 여기저기 먹고살기 위해서 뛰어다녀야 한다. 글만 써가지고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 그러니 젊은 작가 지망생이 없다. 한동안 성행하던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는 문을 닫았고, 중고등학교의 문예반조차도 거의 사라졌다. 학창시절 특기 적성 활동의 상징이요, 그 정점에 있던 문예반이 없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름 좋아 불로초라고 소설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뿐이다. 부산 광안리 일대를 수놓는 화려한 불꽃놀이나 성대한 잔치 마당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면 같은 도시가 아니라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진다. 마치 다리 밑에서 거적을 덮고 추위에 떨면서 불꽃놀이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더 배려해야 하는가. 학문이든 문화이든 기초가 없으면 안 된다. 호주가 그렇게 나가다가 지금은 호주다운 문화가 실종되어 버렸다.
그래도 문학 지망생은 여전히 늘어나고 작가 숫자도 과거에 비해 많다고들 한다. 그렇다 해도 작가 대우가 열악하면 우수한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 60, 70점짜리 수백 명보다 80, 90점짜리 몇 명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창작의 세계이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문학은 예술이 아니다. 문학은 학문이기도 하고 예술이면서도 뭔가 더 높은 차원의 가치가 있다. 교과서에도 문학은 예술과 구분되어 있다. 문학이 쓰러지면 우리의 문화가 쓰러진다. ‘문화’란 말이 문학화란 말이다. 문학에 대한 지원이 일반 예술 장르들과 등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됐다. 등과가 아니라 홀대 수준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한때 인구 250만에 중국 내 자치주가 있었고, 자체 방송국 및 신문사 대학을 비롯한 많은 학교가 있었고, 동북지방(만주)에 여러 민족 가운데 거의 주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분명했다. 지금은 대부분 한국으로 중국의 대도시로 나가 존속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강하게 묶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문학이다. 그들은 그들 사회의 붕괴 위험이 강할수록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강해지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문학인을 존경하고 대우한다. 총상금 1억 원에 가까운 ‘단군문학상’을 몇 해 전에 제정하여 지금 시행하고 있다. 우리 물가로 쳐도 큰돈인데 중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상금이다. 물론 조선족의 기업이 후원한다. 그만큼 그들은 문학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 있다.
‘꽃보다 경단’이라는 말이 있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는 허울 좋은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부산 문화의 기초를 위해 그 예산의 백분의 일이라도 부산 문학 진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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