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가계 소득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그간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됐던 경제적 부(富)가 서민에게도 분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의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최저임금의 1만 원 달성이다. 정부의 가계 소득 확대라는 선한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것은 장점보다 부작용이 더 우려되는 정책이다.
어쨌든 이미 인상은 결정된 상황이고, 애초에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이었기에 그 흐름이 쉽게 바뀌진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이 반드시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고용률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가장 당연하고 기본적인 문제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산업 전반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 자연스레 고용률이 감소할 수 있다. 특히 부울경 지역경제는 조선산업의 장기 불황과 자동차, 해운산업의 고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최저임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영세기업과 위기업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1차 산업인 농업, 수산업, 축산업이 주가 되는 농·어촌지역에 대한 지역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탄력적인 최저임금 적용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 선진국에서도 최저임금 적용에 있어 업종, 나이, 지역별 차등 적용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상에 반기를 들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라도 5일 근무를 기준으로 볼 때 하루 10시간30분을 일하는 꼴이다. 여전히 OECD 노동시간 평균치를 훌쩍 넘는다. 노동시간 단축을 정착시키겠다는 정부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시행 초기부터 구멍들이 보인다. 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 수많은 업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주 52시간 근무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조선기자재 산업만 보더라도 조선산업의 장기 불황으로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한계 상황까지 와 있지만 조선산업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는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조선업은 조선소와 함께 1차, 2차, 3차 기자재 협력사들이 상호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종합조립산업이다. 이는 선박 인도라는 정해진 납기 속에서 각자의 자원을 활용하여 적정의 품질과 납기 준수를 통해 자재와 용역을 공급하고 조선소들은 이들 기자재를 공급받아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공정 속에서 설계가 늦어지거나 자재조달에 차질이 생길 경우 마지막 공정인 생산 부문에서 연장과 특근 작업을 통해 지연된 공정을 만회하고 고객과의 약속인 납기를 준수해 왔다. 이것이 우리 제조업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탄력근무제를 활용한다 해도 고작 3개월로는 무리다. 노동 집약산업이 대부분인 부울경 제조산업이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정책의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주요 국가들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그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길게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최대 단위 기간은 1년이다. 일본은 노동 협약 시 ‘특별조항’을 넣어 연중 6개월 동안 별도의 제한 없이 근로시간 한도 초과를 허용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노사합의로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
산업 전반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무너진 ‘워라밸’을 복구하는 것은 물론 시급하다. 동시에 탄력근로제 도입을 통해 기업의 개별 특성에 맞는 노동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노사합의로 3개월밖에 적용되지 않는 탄력근로제를, 업종별 특성에 맞게끔 1년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현실화하고 기업과 근로자 간 합의에 따른 추가 근무를 인정하는 정책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과 근로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급격한 근로 환경의 변화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특히 해당 업종의 불황과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부울경 중소기업들은 많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운명과 영세 서민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의 변화에 적응하고 상생할 수 있는 정책적, 시간적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선보공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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