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인터넷 개인용컴퓨터(PC) 세탁기 텔레비전…’.

얼마 전 특허청이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세계 10대 발명품 설문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항목들이다. 이들 발명품은 인류의 삶에 혁신과 변화를 주었고, 살면서 제일 많이 쓰는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류가 발명해온 다양한 물건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법적 제도를 고안해 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도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법인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증권도 마찬가지다. 현대 생활은 증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중요한 경제 관계는 대부분 증권을 매개로 실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이처럼 증권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권리를 거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거래의 대상인 권리가 존재하는지 거래 상대방이 진정한 권리자인지를 일일이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를 문서화하여 증권을 발행하면(권리의 증권화) 얘기는 달라진다. 증권을 이용함으로써 거래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젠 법적으로 증권은 권리의 존재에 관한 증거가 되고 증권을 소지한 자는 권리자로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증권도 자본시장의 발전에 따라 중대한 변화가 야기되어 그 기능이 축소되거나 억제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증권이 유용할지라도 대량거래가 이루어지는 증권시장에서는 휴장까지 초래하는 장애요인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백만 건씩 이루어지는 주식매매에 따라 실제로 주권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거래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생긴 아이디어가 증권예탁결제제도이다. 즉, 개인이 보관하던 증권을 전문기관(우리나라에서는 예탁결제원)을 통해 집중보관(예탁)하고(증권의 부동화), 증권거래에 따른 증권의 양수도(결제)를 장부상의 기재만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주식투자인구가 5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투자자가 주권이 실제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주식투자가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탁결제원은 쌓으면 최대 백두산 높이의 약 7배에 해당하는 종이(실물)증권을 관리하던 때도 있었다. 증권의 수수없이 결제가 가능함에 따라 즉, 장부기재가 증권에 갈음하는 상황에 이르자 증권 본래의 역할은 더욱 상실되게 되었다. 여기서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증권을 발행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마침내, 전자증권제도, 즉 종이증권을 발행하지 않고(증권의 무권화) 전자적으로 등록함으로써 그 효력을 부여하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OECD 35개국 중 이미 32개국이 도입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다소 늦었지만 우리나라에도 2016년 3월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19년 하반기에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되면, 발행회사는 증권 발행절차가 대폭 간소화된다. 이는 그만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신속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증권 위변조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증권업계 차원에서는 증권관리 부담이 축소되어 고객 서비스 향상 등 업무효율화를 이룰 수 있다. 투자자 측면에서는 증권발행을 위한 거래정지 등 주식투자 제약 요건이 해소되고 미수령주식·휴면주식 등 투자자의 잠자는 권리 발생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다. 최근 한 회계법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1809억 원, 5년 누적효과로는 9045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현재 예탁결제원과 증권업계는 전자증권제도 도입을 위한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며, 내년 2월이면 전자증권시스템의 전체적 모습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전자증권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발행회사와 일반투자자의 협조도 필요하다. 상장회사를 포함하여 전자증권을 이용하려는 발행회사는 사전에 정관 변경을 통하여 전자증권 도입 근거를 반드시 마련하여야 한다. 상장증권을 직접 소지하고 있는 40여만 명의 일반 국민은 전자증권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제도 시행 전에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증권을 거래하는 증권회사에 맡겨야 한다. 전자증권제도는 ‘종이증권 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로의 본격적 진입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본시장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인류의 새로운 발명품은 그때마다 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 왔다. 내년에 도입될 전자증권제도가 우리 자본시장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고, 궁극적으로 자본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