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리라는 작가가 있다. 아니, 그런 작가가 있었다. 박지리.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작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감춰두고 싶기도 하고, 모두가 알고 사랑하게 나서서 알리고 싶기도 한 작가.

그의 마지막 책이 발간되었다. 이달 중 발간 예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당장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났는데, 막상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 진열된 걸 보고는 선뜻 살 수가 없었다. 읽기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2년 전 9월 28일, 작가는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0년에 사계절 문학상 제8회 대상작에 첫 작품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뒤, 녹록지 않은 일곱 권의 작품을 남겼다. ‘합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세븐틴세븐틴’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그리고 이번에 나온 ‘번외’까지. 이 책 중 ‘세븐틴세븐틴’은 단편이고 나머지는 모두 장편이다. 이 많은 책을 넉넉하게 잡아도 7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썼다는 게 나로서는 입을 다물 수 없게 놀라운 사실이다.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한 권 한 권이 곱새기고 싶도록 뛰어난 작품이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이 작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도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 작가의 책보다 강렬하면서, 색다르면서, 마음 깊은 곳을 헤젓는 책은 만나지 못했다. 읽은 후의 충격과 감동을 혼자 감당하지 못해 버거워한 책은 없었다.

나는 작가의 작품들이 내 속에 일으켜놓은 소용돌이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 6개월 동안 청소년들과 박지리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올 2월 작가의 모든 작품을 편집한 편집자를 초청해 ‘박지리 작가에 관한 기억’이라는 대화 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작가에 대해, 작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동시, 동화 작가 몇 명이 책방에 들렀다. 그들에게 박지리 읽기를 권했다. 어렴풋이 작가를 알고 있던 그들은 적극 호응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 지난 8월, 그들과 함께 ‘박지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자리’를 마련했다. 부산지역의 아동문학인들과 어린이책 관련 활동가, 독자 여러 명이 참석해 긴 시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수록 작품은 더 다양하게 해석되고, 더 깊이 수용되었다. 아주 의미 있는 자리였다.

지난 20일, 사계절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에서도 작가를 생각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되는 것을 기념하는 자리로, 작가의 첫 번째 독자로서 각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편집자와 시상식에서 단 한 번 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 선배 작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두 사람이 몇 가지 이야기를 준비해왔다.

객석에는 박지리를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심지어 경외하는 작가들, 책방 운영자들, 독자들이 참석했다. 그날 자리 이름은 ‘박지리 팬클럽 결성’이었는데, 나는 그 이름이 좀 이상했다. 하긴 이 작가의 책을 어떻게 더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빠’라고 불린 적도 있으니까.

작가의 죽음을 알고 난 뒤, 책을 읽을 때마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참기 어려웠다. 더는 그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가 나왔다. 그때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먼저 쓴 글이지만 뒤늦게 나온 것이었다. 그 책이 나오고도 아쉬움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시 한 권이 나온다. 자신을 그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제 그만 안타까워하라고 저승에서 보내온 선물 같다. 그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많이 누그러뜨린다.

‘팬클럽 결성’에서 앞에 나와 이야기한 사람들은 ‘번외’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읽지 않은 사람들 앞이라 내용을 말하지는 못하고, 그저 좋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편집자는 ‘번외’로 박지리의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임에도 그 작품이 앞선 모든 작품을 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니 놀랍다. 기대가 더 크다.

박지리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이다. 나 혼자 읽을까? 한 번 더 이야기 자리를 만들자고 한 사람들과 함께 읽을까? 일단 혼자 읽고 다른 형식의 자리를 만들까? 두 가지 판형 중 어떤 걸 먼저 읽을까?

작가 기일에 책을 가지러 책방에 가기로 했다. 다시 작가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생큐!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