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적지 않은 고향 집에선 자식들 집값 얘기로 조상님 차례상이 차려질지도 모르겠다. 집값이 너무 올라 세금 걱정하는 자식보다 안 올라서 약만 오른 자식이 더 많을 것 같다. 아니 제 집 한 칸 없어서 말 못하고 등 돌려 누운 자식이 더 마음 아프겠다. 부모 속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요즘 집값은 고향 집 부모의 속을 썩이는 불효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선 극소수를 빼고 평생 구입하는 단일 재화 중에서 제일 큰돈을 내야 하는 것이 집일 것이다. 삶의 기본적 세 가지 요소, 의식주(衣食住) 중에 의(衣)와 식(食)은 산업화 덕분에 거의 해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주(住), 즉 집은 아직도 해결이 아닌 문제로 남아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경제학자 베버리치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를 위해 발표한 말이다. 복지국가의 이념을 상징하는 이 말은 거의 모든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에게는 낯익은 말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러움과 동의어다. 집 복지, 즉 주거복지 측면에서는 거리감이 더 느껴진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난 요즘에는 집값이 뜨거워서인지 특히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집 문제와 금융을 한데 묶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는 큰 노력이 있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 주택금융 분야에 있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국민적 바람의 결과였다. 2004년의 일이니 햇수로 벌써 15년째다. 그 이후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줄곧 집의 공급(건설)은 물론이고 다양한 수요 패턴에 맞게 공공차원의 정책금융 서비스를 펼쳐오고 있다. 즉 전·월세를 얻든지, 새로 아파트를 분양받든지, 평수를 늘려 집을 새로 장만하든지, 더 나아가 집을 고치거나 노후의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든지 간에 공사의 주택금융은 늘 국민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 생애주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주택금융 서비스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가구주의 나이를 기준으로 가구 생애주기를 4단계로 구별하고 있다. 가구의 형성기(25~34세), 확장기(35~44세), 수축기(45~65세), 소멸기(65세 이상)로 나눈다. 통계청 기준이다.
먼저 형성기(25~34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결혼까지 하는 시기다. 이때의 주거형태는 주로 전세 거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금수저가 아니면 셋집을 구해야 하는 데 부모에게 손 벌리기가 쉽지 않다. 은행 가서 전세대출을 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신용도와 담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에게 선뜻 대출금을 건네줄 은행은 사실 없다. 이럴 때 공사가 부모와 국가를 대신하여 보증을 서주고 있다. 은행은 공사 보증서를 믿고 싼 이자로 대출해 준다. 대출기간 연장도 어렵지 않고 집을 옮겨도 까다롭지 않게 계속 쓸 수 있다. 대부분 공사와의 첫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구확장기(35~44세)는 결혼 이후 자녀의 출산과 양육으로 가구 규모가 커지는 시기다. 그러니 집 크기도 확장해야 하는 때다. 소득도 늘어나서 전·월세 집에서 내 집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면 중도금을 대출받아 내야 하는데 여기에도 공사의 보증이 낀다. 분양받은 아파트가 다 지어져서 꿈같은 입주를 할 때도 막대금(잔금)은 보금자리론으로 메꾸면 싸고 편리하다. 만약 그때에도 결혼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았으면 신혼부부 혜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자녀가 있다면 다자녀 전용 보금자리론이 제격이다. 이는 자녀 수에 따라 지원 규모가 늘어나는데 자녀가 한 명만 있어도 혜택이 따라붙기 시작하니 메모해 둘 일이다.
가구수축기(45~65세)는 자녀의 독립으로 가족이 축소되는 때이고 소멸기(65세 이상)는 노부부의 사망으로 가구가 사라지는 시기를 뜻한다. 수축기와 소멸기는 자녀 출가로 목돈이 많이 들어가고 본인의 은퇴로 소득이 감소하는 때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을 들어야 할 타이밍이다. 충분한 노후자금은 없고 집만 달랑 한 채 가진 분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필수 선택항목이다. 내 집 가지고 연금 받으며 당당하게 노후를 보내는 게 미덕인 시절이다.
주택금융공사의 이러한 생애 맞춤형 주택금융 프로그램은 내년이면 15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까지는 도입단계였다고 본다. 이곳저곳 손 볼 데가 많다.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 영세 소상공인들, 지방 지역민들, 그 밖에도 이 화목한 명절에 고향 집을 맘 놓고 찾지 못하는 다양한 취약계층을 위하여 세심하고 따뜻한 상차림이 필요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평생 선물을 차리는 주택금융 레시피에 혹여 빠지거나 부족한 건 없는지 둘러 볼 일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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