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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언제까지 엘리트 체육을 고수할 건가 /염창현

‘국위선양’ 구호 아래 국제대회 출전 선수들 성적지상주의에 매몰

일과 운동 병행 위한 생활체육 육성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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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보스턴 마라톤의 우승자는 일본인 가와우치 유키였다. 같은 대회에서 1987년 이후 31년 만에 1위에 오른 일본인이어서 자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주위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가와우치의 직업. 그는 마라톤팀 소속이 아니라 일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사무직 공무원이었다. 가와우치는 직장 일과 훈련을 병행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알고 보니 가와우치도 고교 때까지는 육상을 했던 선수 출신. 기록이 좋지 않고 부상까지 입자 중도에 운동을 그만두었지만 대학과 직장에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마라톤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운동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살던 평범한 공무원이 어느 순간 마라톤 고수가 됐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쳇말로 ‘밥만 먹고 종일 운동만 하는’ 선수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을 직장인이 해냈다는 사실은 두고 두고 화젯거리가 될 만했다.

외국에는 가와우치처럼 ‘이중 직업’을 가진 선수가 적지 않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한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흐슈타인은 일선에서 뛰는 연방경찰관이었다. 미국 봅슬레이팀의 네이트 웨버는 육군 중사로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파병되기도 했다. 덴마크의 컬링 남녀 선수 가운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비롯해 재무설계사, 항공기 기술자, 디자이너, 간호사가 섞여 있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때는 각국에서 우체부와 모델, 승려 등이 대회에 출전해 시선을 끌었다.

본업을 유지하면서 좋아하는 운동을 잘해 국제대회에 나가는 외국의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운동 하나에만 매진해 온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면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대표로 뽑힌 이들도 대부분 1년 내내 가동되는 선수촌에 머물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삶을 즐기면서 운동을 한다’는 말은 애초 끼어들 자리가 없는 셈이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 역시 상상 이상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는 당시 “훈련이 너무 힘들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 들고 싶었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엘리트 체육은 필연적으로 성적 지상주의로 흐르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국위 선양’이라는 그럴싸한 덧말까지 붙여지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전사가 돼야 한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패배자로 전락한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는 외국 선수에 비해 은메달을 따고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우리나라 선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이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한 바를 아예 부정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국제대회에서 승전보를 울리며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선수들의 투혼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스포츠를 일방적인 애국심 고취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구시대 발상일 뿐이다. 팬들은 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길 원하지 더는 금메달 숫자가 국력의 상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3위에 오른 우리나라가 24년 만에 2위 자리에서 밀렸어도 예전처럼 ‘한국 체육의 몰락’이라는 식의 호들갑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달리 오래전부터 생활체육 육성에 주력했던 일본이 이번에 한국을 압도하며 2위를 되찾은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경제력만을 놓고 보면 선진국 반열에 도달했다. 반면 체육 분야로 범위를 좁히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반인들이 즐기면서 운동을 할 여건은 아주 열악하다. 그동안 엘리트 선수 육성이 국가의 우선 과제로 책정되면서 모든 체육정책이 한쪽으로 쏠린 까닭이다.

최근 국방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올해 아시안게임 전후로 논란이 된 체육인 병역특례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아예 없애자는 것에서부터 혜택자 범위 축소, 누적 점수제 도입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여기에서 시야를 더 넓힌다면 한국 엘리트 체육도 차제에 논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국제대회 성적을 고려해 엘리트 체육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게 힘들다면 선진국 사례를 본떠 생활체육 육성을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옳다.

‘이중 직업’ 선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들이 운동을 할 만한 여건이 좋아지고 저변이 확대됐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어제까지 범죄자를 잡던 한국 경찰관이 오늘은 선수로서 국제대회 빙판을 누비는 모습을 우리도 이제는 볼 때가 됐으련만.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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