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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두 개의 애국가, 하나의 아리랑 /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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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9 19: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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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인마, 우리가 애국가지 북한이 애국가야? 제대로 취재해서 다시 보고해!”

2002년 10월 1일 부산. 부경대학교 체육관에 인공기가 걸렸다. 북한 국가(國歌)도 울렸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으로 제2연평해전이 터진 게 불과 석 달 전인 ‘살벌한’ 때였다.

그해 9월 29일~10월 14일 부산에서 펼쳐진 제14회 아시안게임의 한 장면이다. 분단 이후 처음 북한이 남한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북한은 선수단 316명을 파견했다. 이에 더해 ‘미녀응원단’ 280명과 취재진 등 357명을 ‘만경봉-92호’에 태워 다대포항으로 보냈다.

개막 사흘째, 북한 여자 역도 리성희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북한의 금메달은 사실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어떻게 우리 땅에서 인공기를 게양하고 북한 국가를 연주할 수 있느냐’는 여론이 만만찮았다.

당시 시상식 분위기를 기사에 담았다. ‘남한 땅에서 사상 처음 북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기사를 전송하자마자 데스크에게 정신없이 혼쭐났다. ‘애국가’가 우리 국가지, 북한 국가냐는 거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나라마다 국가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아무 생각 없이 ‘북한 애국가’라 쓴 게 화근이었다.

어쨌든 데스크 지시가 떨어졌으니, 북한 국가 이름을 무조건 알아내야 했다. 1년 차 기자의 얕은 인맥을 총동원했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정보기관 역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는 수 없었다. 어렵게 북한 선수단 숙소 전화번호를 구해 전화했다. 10분 넘게 무작정 전화벨을 울렸던 것 같다.

‘포기할까. 그냥 시원하게 욕 한 번 더 먹고 말까’. 이런 생각이 스칠 즈음 전화 연결음이 뚝 끊겼다. 누군가 전화를 받은 거다. 아무 말이 없었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더 기다릴 여유가 없어 먼저 물었다. “남측 기자입니다. 우리는 우리 국가를 애국가라 하는데 북측은 뭐라 부르나요.”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애국가입네다!”

그날 이후 국내 언론은 북한이 금메달을 딸 때면 ‘애국가’란 단어를 이따금 사용했다. 하지만 애국가보단 ‘북한 국가’라는 표현을 훨씬 더 많이 썼고, 애국가라 쓸 땐 뭔가 특별하다는 표시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북한 국가를 애국가라 부르는 게 불경스럽다’는 인식도 깔렸으리라.

그렇게 2002년 부산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두 개의 애국가가 있었다. 남한 애국가가 96번, 북한 애국가가 9번 울렸다. 남과 북은 서로를 너무 몰랐고,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다.

2002년 부산을 떠올리면, 지금은 세월이 참 많이 변했다. 지난 26일 남북단일팀이 제18회 아시안게임 여자 카누 용선 5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2명의 남북 선수가 ‘한 배’를 타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뚫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하늘에 한반도기가 펄럭였다. 그리고 이번엔 두 개의 애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시상대 위 선수들은 아리랑을 합창하며 부둥켰다. 선수들은 주먹을 높이 들고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쳤다. 2002년 부산과 달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엔 하나의 아리랑이 있다. 하나의 팀 ‘코리아’가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본다. 지난 20일 역도 남자 56㎏급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 엄윤철 선수는 “남측 관중의 열렬한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엄윤철은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때 “달걀에 김정은 원수님의 사상을 넣으면 바위도 깰 수 있다”고 ‘도발’했던 바로 그 선수다.

아리랑을 울릴 기회는 남았다. 30일 남북단일팀 코리아는 대만과 여자 농구 결승전 진출을 다툰다. 남측 박지수, 북측 로숙영 선수의 활약에 기대를 건다. 우리는 자카르타·팔렘방에서 또 한 번 하나의 아리랑 가락을 들을 수 있을까.

이미 쾌거를 이룬 여자 카누 남북단일팀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도 단일팀 출전을 추진한다. 하나의 아리랑 가락이 자카르타·팔렘방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질 수 있을까. 그러다 또 세월이 더 흐르면 우리가 하나의 애국가를 부를 날도 올까.

디지털뉴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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