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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반갑다, 부마재단! /고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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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8 18:52:0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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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공기는 불온했다. 가을날은 그지없이 청량했고, 본관 앞 넓은 잔디밭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는 패들로 여전히 가득 차 있었지만, 팽팽한 긴장감은 터질 듯했다.

15일에 한 차례 유인물이 돌면서 시위가 불발되자 그 긴장감은 일촉즉발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상대 강의실에서 터져 오른 ‘유신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은 시위대열을 이루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대열은 도서관 앞에서 급격히 불어났고 운동장을 돌면서 수천 명이 넘실대는 도도한 격류로 변했다.

아, 얼마나 억눌려 지냈던가? 일찍이 교과서에서 배웠던 모든 민주적 원리는 다 내팽개쳐지고, 박정희와 그를 둘러싼 군부세력이 무소불위의 영구집권을 획책하며 국민들의 귀와 입을 틀어막아도 말 한마디 못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저희끼리 뽑아도, 그 대통령이 국회의원 1/3을 임명해도, 반정부 시위는커녕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남몰래 끌려가 매찜질을 당하고 징역살이를 해야 하지 않았던가. 노동자와 농민의 기본권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반공법의 칼날에 ‘빨갱이’가 되어 평생을 허덕여야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목 놓아 ‘민주’와 ‘자유’를 외쳐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유신대학생이란 오명을 들으며 숨죽이고 있었던 부산대생들은 급기야 교외로까지 진출하여 열렬히 환호해 주는 시민들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부산대와 동아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학생들과 부산시민들의 유신체제에 대한 분노는 식을 줄 모르고 17일로 이어지며 확산하였고, 계엄령이 선포된 살벌한 상황에서도 18일의 시가지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경남대생을 비롯한 마산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경상남도로까지 번져나간 항쟁의 불길은 20일까지 계속 타올랐다.

그런데 탱크와 총칼을 앞세운 계엄령과 위수령 속에서 부산과 마산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던 10월 26일, 유신의 심장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런 전혀 뜻밖의 상황 속에서 부마항쟁은 다소 어리둥절한 상태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토록 국민들의 모든 권리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끝 모르는 야욕을 불태우던 원흉이 사라졌으므로 시민들은 곧 민주화의 봄이 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제물로 삼으며 참혹한 정권탈환작전을 감행함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리려 했던 광주시민들은 차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부산, 마산, 광주 시민들의 그 민주화 열망은 다시 7년을 지나 1987년 6월항쟁의 승리로 성취되었다.

4·19혁명 이후 18년 만에 폭압의 사슬을 끊고 일어났던 부마민주항쟁.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의 우두머리를 끌어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곧이어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이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변방의 소요사태 정도로 치부되던 그 항쟁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본격적 움직임이 무려 39년 만에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창립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부산과 마산에서 여러 단체가 나름의 방식으로 부마항쟁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에 관한 여러 연구 성과도 축적되었고, 시민들에게 그 정신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부산과 경남의 여러 관련 단체와 시민이 힘을 모아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하나의 재단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그간 미진했던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놓인 것이다.

내년 40주년부터 부마항쟁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대로 기념하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그 항쟁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또 그 정신을 모든 국민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함께 실천하는 일이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

많이 늦었지만 정말 뜻깊은 일이다. 부마항쟁으로 시작해 6월항쟁으로 한 단계 성취를 이룬 우리의 현대사를 재정립하는 길이기도 하고,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긍지를 드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시민의 관심과 질정이 필요하리라.

정치개혁부산행동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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