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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포스트 노회찬, 정의당만의 몫일까

구태 정치 바꿔야 한다는 고인 추모 열기와 달리 거대 양당 변화는 요원

그의 빈자리 메우는 건 그를 기리는 모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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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지만, 그가 없는 자리가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하긴 고작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니 난 자리를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니더라도 어느 죽음이든 상실감이 큰 주변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 수도 있다. 다만, 어김없이 이런저런 공방이 이어진 지난 한 달간의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 그가 살아있었다면 또 어떤 촌철살인을 날렸을지 새삼 아쉬워지는 건 사실이다. 이처럼 조금씩 그의 난 자리는 커 보일 게 분명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지난달 23일 고 노회찬 의원이 비극적 선택을 하며 정의당에 남긴 마지막 당부다. 그로부터 한 달 여. 정의당은 가까스로 슬픔을 추스르고 그의 유지를 잇기 위한 각종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추모사업은 가칭 ‘노회찬 재단’의 설립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노회찬’을 발굴하고, 그의 진보정치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정치학교 형태 운영이 거론되고 있다. 작게는 ‘제2, 제3의 노회찬’을 키우려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인이 생전에 꿈꾼 정치 정신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이다.

당의 간판과도 같은 동료를 황망하게 잃은 정의당으로서는 당연한 움직임이다. 진영을 가리지 않는 엄청난 추모 열기로도 모자라 당 지지율 상승이라는 그의 마지막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당의 몫이다. 동시에 지금의 지지와 성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도 떠안았다. 고인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스타 진보 정치인의 명맥을 이어가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이 모두가 고인이 남긴 뜻이라 생각하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리라 믿는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진 이른바 ‘노회찬 현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각계각층의 갈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까닭이다. 작게는 그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겠다. 온갖 갈등으로 삭막한 정치판에 해학과 유머 섞인 그의 촌철살인은 작은 숨통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노회찬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캐릭터는 더 나은 정치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사람 좋은 웃음과 촌철살인 뒤에 그가 꿈꾼 세상은 분명했다. 약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 특권 없는 정치가 그것이고 국민적 추모 열기의 지향점도 여기에 닿아 있다.
이 같은 추모 분위기에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야 할 것 없이 많은 정치인이 고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추모의 말들을 쏟아냈다. 비록 당과 이념은 달라도 그가 남긴 족적을 따르겠다는 뜻일 터이다. 그의 죽음이 정치권에 던진 의미를 생각해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였을까. 지난 한 달간 여야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역시나 고인의 죽음 앞에서 내뱉은 말들은 한낱 레토릭에 불과했다.

국회 특권을 없애기 위한 특수활동비 폐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모습이 그랬다. 국회 특활비 폐지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이기도 했다. 국회는 여론에 떼밀려 개선 방침을 밝혔지만 몇 차례나 꼼수를 부렸다. 결국 여론이 더욱 악화되자 의장단 몫 등 극히 일부만 남기고 특활비를 마지 못해 없앴다. 고인의 오랜 숙원이었던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제를 개편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임에도 미적거리고, 자유한국당 또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거대당의 횡포가 계속되는 한 고인이 원했던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나마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계기인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는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 만큼은 참으로 발 빠르다. 그러나 그가 목숨까지 내던지며 얻고 싶었던 게 과연 정치자금법 개정이었을까. 자신은 비록 정치자금법의 족쇄에 얽매여 이렇게 사라지지만 이를 포함한 후진적인 우리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진정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 노회찬’은 결코 정의당만의 몫이 아니다. ‘포스트 노회찬’은 ‘제2, 제3의 노회찬’을 키우는 것을 넘어 그가 이루려 했던 정치판이고, 세상이다.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이긴 해도 거대 양당에게서 이런 의지는 없어 보인다. 늘 그래왔듯 화려한 정치적 수사만 남기고 고인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웠던 국민적 추모 열기마저 세월과 함께 허망하게 식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수천만의 노회찬으로 살겠다’는 한 달 전 약속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난 자리를 메우는 건 결국 그를 기리는 모두의 몫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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