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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여름날의 행복 /박재현

불가마 같은 도시를 떠나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구름과 산과 바람과 논다…오감이 행복으로 물든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22 19:04:0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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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물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강원도 평창군 평창강. 그 강에 주저리주저리 매달린 개천들은 정말 바닥이 훤히 드러난 파리한 눈을 가진 여신의 모습과도 같았다. 금방이라도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싶은 금당계곡. 그곳은 명경지수(明鏡止水), 산자수명(山紫水明)이란 말로 표현한데도 보지 않으면 상상이 가지 않는 너무나도 해맑은 물이었다.

내가 평창강에서 갈라진 작은 지류인 금당계곡에 들게 된 것은 순전히 불알친구 덕분이다. 실내 장식을 요구하는 사람이 짓고 있는 통나무집도 볼 겸. 나뭇잎들이 나룻배처럼 동동 떠가는 금당계곡 맑은 물에 어항도 놓아보고, 눈 시리도록 파리한 물 바라보며 눈과 마음도 씻어보고, 가을로 달려가는 산에서 하루를 보내면 어떻겠냐고. 거어! 좋지! 두말할 이유가 무에 있누. 내친 기에 가자고. 달려가자. 지화자 좋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통나무집에 벌렁 누워 반짝반짝 별을 따야지. “산은 이런 산을 보아야 하고, 물은 이런 물을 보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처럼 정말 상큼한 산으로 둘러싸인 금당계곡의 소살소살 구르는 계곡물은 맑기가 그지없고 비췻빛까지 나 나도 모르게 그 안으로 쑤욱 빠져드는 것 같은 마력에 그만 풍덩 몸을 던졌다. 언제 이렇게 깨끗한 물을 보았던가. 금당계곡 맑은 물은 설악산 백담계곡에서나 보았던 그 비췻빛 물,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잔자갈들이 널펀하게 깔린 바닥 위에 꿈에서나 볼 법한, 신선만큼이나 하얀 얼굴을 한 큼지막한 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물가에는 달뿌리풀이 바람에 휘영휘영 휘날리고 이에 질세라 갯버들도 춤사위를 날리고. 나도 질세라 작은 돌 하나로 바람을 따라 ‘퐁퐁퐁’ 물수제비를 떴다. 스러진 돌이 이방인처럼 머문 자리엔 여뀌니 억새니 풀들이 분분히 널린 것 같지만 거기엔 자연의 오묘한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아래 움을 틀고 살 물총새니 버들치니 갈겨니니 눈치니, ‘퐁퐁퐁 쏭쏭쏭’ 물수제비에 놀란 것 같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해 보이기만 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해.
우렁우렁 우렁차게 여울을 돌다가 널펀한 자리에선 언제 우렁거렸냐는 듯 소살소살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을 한 움큼 떠내어 마셔보니 시원하기가 그만. 맛나기가 그만. 이 맛이 순수 그대로의 물맛이야. 순간 작은 파문에 놀라 화들짝 도망치는 버들치며 눈치며 모래무지며. 놀란 토깽이 눈을 하고 쏜살같이 내빼는 그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날렵한 필치로 그어낸 수묵 묵란의 느낌이라고 할까. 멀리 가지도 못했으면서도 이젠 안심이라고 물살에 몸을 맡기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물고기들의 모습은 또 한지 위에서 수묵이 번져 가는 느낌이랄까. 두 손 모아 떠내면 손안에 다 잡을 것 같지만 어찌나 그놈들의 몸놀림이 재빠르고 날렵한지. 내 느린 손아귀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어항을 꺼내 얕은 물가에 넣어두니 투명한 어항이 집이라도 되는 양 한 마리 두 마리 쏘옥쏙 쏘옥쏙. 정말 많이도 잡히는 걸. 그냥 구경만 해도 재밌기만 해. 자연에서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먹거리도 자연에서 구하고. 쉼터도 자연에서 찾고. 삶의 유희도 자연에서 맛보고. 여울 돌아 스멀스멀 기어가는 계곡물이 펑퍼짐 모래언덕을 만들면 야트막한 물에 아장아장 종아리를 걷고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아이들아 놀아라! 이렇게 깨끗한 물에 종아리 담그고 마음껏 놀아라! 정말 아이들 놀이터로는 그만이다. 아이들은 모래 둔덕에서 물장구치다 모래무지 잡다 정말 재미있어라 하고. 그 모양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소슬바람을 맞는 재미도 쏠쏠하기만 하고. 온종일 물가에 앉아 버들치며 갈겨니며 눈치가 한가로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 중의 재미.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바람이 놀자하고 버들치가 놀자 하고 갈겨니가 놀자 하고 억새가 놀자 하고 구름이 놀자 하고 산이 놀자 하고 갯버들이 놀자 하고. 세상에 이처럼 좋은 친구들이 어디에 있어.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은하수를 바라보며 우렁우렁 소살소살 구르는 계곡물 소리를 듣는 재미는 오감이 시릿시릿.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끼지 못했던 오감이 스멀스멀 근질거리기도 하고, 찌릿찌릿 전기에 감전된 것 같기도 하고. 거기다 맑은 바람에 씻긴 눈으로는 온 세상을 다 볼 수도 있고, 까드득까드득 온밤을 새워도 하나 졸리지 않을 것 같은 시간. 그 밤을 나는 맘껏 누리고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기온과 온열환자가 넘쳐나는 불가마 같은 도시의 여름을 저 멀리 던져두고 신선처럼 계곡에 앉아 고요한 하늘과 산과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행복, 가까운 계곡이라도 들면 이렇게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경남과학기술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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