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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여름이 간다, 아프다 /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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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19 19:34:5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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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니 바람이 분다. 여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운 열기로 꽉 차 있던 공기에 서늘함이 묻어 있다. 맨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황홀하다.

긴 여름이었다. 도대체 물러설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는 적들에 포위된 것처럼 몹시도 더디게 하루가 흘러갔다. 사상 유례없이 근 한 달간 지속한 열대야는 급기야 더위가 공포로 느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기온이 내려가고 밤바람이 불고 하늘이 맑아졌다.

아, 징조가 있긴 했다. 그저께 운전을 하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자동차 앞 유리창에 슬쩍 부딪히면서 떨어지려는 찰나 방향을 조절하면서 다시 날아올랐다. 잠시 잠자리와 눈이 마주쳤나 싶을 정도로 나와 잠자리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여름은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11년 만의,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더운 올여름에도 삶의 현장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대형마트의 야외 주차장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머리 위에서 태양은 더 맹렬했고 고온에 더 빨리 굳어지는 시멘트 때문에 작업공정에 내몰리는 중년의 건설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몇 년 전 아들이 군대를 전역하고 나왔을 때, 그때도 여름이었고 더웠다. 아들은 복학 전에 아르바이트로 두 달간 에어컨 설치 보조를 했다. 첫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거의 쓰러지듯 누워서 아침까지 일어나질 못했다.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 그만두라고 했더니 조금 더 해보겠다면서 결국은 두 달을 채웠다. 아들의 노동은 곁에서 보기에도 무거웠다. 어쨌든 아들은 일을 해 돈을 벌었고 그 돈은 학교 앞 옥탑방 보증금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아들과 함께 부평시장을 간 적이 있다. 아들은 시장 안의 4층, 5층짜리 건물들을 가리키며, 저기 내가 에어컨 설치한 곳인데, 어, 저기도, 하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건물 간의 거리가 손가락 한 뼘일 정도로 붙은 건물들은 입구에 좁은 계단이 보였다. 그 좁은 계단으로 무거운 에어컨과 실외기, 공구들을 들고 오르내렸을 아들을 생각하니 짠해졌다. 이미 지난 일이었지만 그때 아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어서 새삼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몹시도 더운 어느 하루, 젊은 청년이 전기에 감전되어 의식불명 상태로 열흘을 버티다 죽었다. 그 아이도 전역한 지 2개월, 2학기 복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부모님께 용돈 받는 게 미안해서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택배물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 4시경 일을 마칠 무렵 마무리 청소를 위해 컨베이어벨트 밑으로 들어갔다가 감전사고를 당했다. 모두 열대야로 잠을 설치던 그날, 군대도 무사히 다 마치고, 처음 일하러 간 곳에서 친구와 함께 일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매우 무더웠던 모양이다. 현장 사진을 보면 윗옷을 벗은 청년이 컨베이어 벨트 밑으로 들어가고 바로 이어서 다른 청년이 그를 당기는 모습이 보인다. 그 청년은 쓰러지면서 ‘전기가 흐른다’고 했고 친구는 그를 구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도 감전이 되어 병원 치료를 받았다. 회사는 아직도 사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청년도, 친구의 비극적 마지막을 목격하고 평생을 화인처럼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는 청년도 너무나 가엾다. 청춘들에게 유독 더 가혹한 시절이다.

30년 전 여름에도 15살의 문송면이란 소년이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죽었다. 현장실습을 나가서, 승선실습을 나가서, 건설 현장에서, 생산현장에서 온갖 형태의 노동으로 젊음은 소비되는데 추락하는 그들을 받쳐줄 안전그물이 없다. 도대체 어른들은 뭘 하나. 왜 그들에게 이건 이래서 위험하고 저건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그 평범하고 쉬운 말을 어디다 쓰려고 그리 아끼고 아끼는가. 아껴야 할 것은 채 어른도 되지 않은 채 삶의 현장으로 나서야 하는 귀하고 귀한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쾌적한 밤이다. 끝내 이 서늘한 행복을 다시 맞이하지 못한 이들을 추모한다. 올여름 내내 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산 우리 모두에게는 경의를!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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