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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홍대 몰카·안희정 사건…여성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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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19 18: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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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여성들이 매우 화가 나 있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감지된다. 왜 길 가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하나? 왜 공중화장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생면부지의 남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어야 하나? 누군가가 나를 찍어 음란사이트에 올려놓고 낄낄거리지 않을까 왜 불안해해야 하나?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좌절과 분노가 어디 이것뿐일까만.

여성 평등권 운동이 남성과의 갈등과 대립이란 방식으로 왜곡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50년 전 남자들의 밥상 밑에서 눈칫밥을 먹던 우리네 어머니의 딸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섰다. 그만큼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거다.


   
지금 한국 사회는 치열한 ‘성별 간 전쟁’ 중이다. 며칠 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의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 후 불꽃 튀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단체의 분노 어린 기자회견은 물론 법원의 후진적인 여성인권 감수성을 탄식하는 칼럼도 쏟아졌다. 이제야말로 서울 혜화동과 광화문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여성들의 날 선 다짐도 있었다. 한편으론 법원 판결이 뭐 어때서 이 난리냐, 내막을 들여다보니 무죄일 수밖에 없는 정황이더라는 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여성 비서의 무고성 ‘미투’ 때문에 전도양양한 정치인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반응을 보인 이도 있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댓글도 눈에 띄지만 인터넷 속 ‘성별 간 대전’의 주체는 20, 30대 남성과 여성인 것 같다. 나처럼 환갑을 앞둔 평범한 남성으로선 그들의 치열한 설전의 맥락을 따라가기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여성들이 매우 화가 나 있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감지된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가 지금 엄청난 격변 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오래된 기억 한 토막부터. 5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나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이웃 마을 친구네에 놀러 가게 됐다. 하룻밤 자고 아침을 얻어먹는데 자식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네 아들이 왔다고 친구 어머니가 마음먹고 상을 본 모양이었다. 애호박 넣은 된장찌개, 생선구이, 계란찜, 연근조림 따위. 그 집 아버지를 중심으로 친구와 나는 밥상맡에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았는데, 친구의 어머니와 누나들은 돌아앉아 방바닥에 그릇을 놓고 밥을 먹는 거다. 반찬이라곤 전날 먹던 찌개와 김치 보시기가 전부였는데 밥그릇도 따로 없이 양푼 하나에 눌은밥이 담겨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고 민망했더랬다. 그게 50년 전 농촌 마을의 일상적인 식탁 풍경이었다는 건 나중 알게 됐지만, 오래 서늘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런 이야길 꺼내는 건 우리 사회의 성차별 풍속도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나도 아들, 딸 키워봐서 하는 말이지만, 요즘 한국 중산층 가정에서 아들, 딸에 대한 눈에 띄는 차별은 거의 사라졌을 터이다. 대학 진학률도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 세상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온 젊은 여성들이 처음 부닥치는 게 바로 여전히 강고한 성별 불평등이 아닐까. 지금 교사도, 공무원도, 판검사도, 기자도 여성 취업률이 더 높다. 그런데도 직장 내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 매우 낮은 ‘유리천장’ 아래 갇혀 있는 게 현실 아닌가. 꽤 바뀌었고, 계속 바뀌는 중이라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가 남성 위주로 짜여 있는 건 어김없는 현실이다.

내가 남자 동기보다 일을 잘하는데도 왜 승진에서 밀려나는가. 나도 공채 거쳐 입사했는데 왜 회식에서 남자 상사의 옆자리에 앉아 마음에도 없는 웃음 보여주기를 강요당하는가. 단합이랍시고 밤늦게 술이나 퍼먹는 자리에 끼기 싫어한다고 왜 나더러 이기적이라고 매도하는가.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야단이면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왜 상사의 구겨진 얼굴과 마주쳐야 하는가. “이래서 여자들은 안 돼”란 소리를 왜 귓전으로 들어야 하는가. 똑똑한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좌절과 분노는 이런 것이겠다.
그뿐도 아니다. 언론 보도로 드러나는,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채 묻히는 숱한 성폭력은? 왜 길 가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하나? 왜 공중화장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생면부지의 남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어야 하나? 누군가가 나를 찍어 음란사이트에 올려놓고 낄낄거리지 않을까 왜 불안해해야 하나?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좌절과 분노가 어디 이것뿐일까만.

그런 분노가 표출된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홍익대 몰카 사건’에 촉발된 여성 수만 명이 모인 시위일 터다. 미대의 여성 모델이 성기를 노출한 남성 모델의 사진을 찍어 ‘워마드’란 여성 전용 사이트에 올린 것이 발단이다. 경찰이 득달같이 가해자를 잡아넣었다. 그러자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한 거다. 몰카야 남자들 전공(?)인데 남자들의 범죄엔 뒷짐 지던 경찰이 어쩌다 생긴 여성의 범죄엔 왜 그렇게 신속하고도 가혹하냐는 것.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다, 남성 범죄자들도 많이 잡아넣는다, 이번엔 범인을 특정하기가 쉬워서 빨리 검거한 것뿐’이라고 경찰이 해명했지만 분노에 기름만 끼얹은 꼴이 되고 말았다.

안희정 재판도 마찬가지. ‘위력 관계지만 실제로 행사된 건 아니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혐의 전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다시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판결이 좀 전향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판결문을 읽어보면 법원 나름의 현실적인 고민이 없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든다. 피해자가 보였다는 석연찮은 언행, 현행 법체계의 한계 등등. 여하튼 법원을 향한 여성 일반의 분노는 식지 않고 있다.

개별 사건에 대한 경찰이나 법원의 대처가 반드시 틀렸다고 단언하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일부 여성이 ‘과녁 없는 분노’에 매몰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뜯어보면 여성들의 분노는 이런 단일 사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인터넷을 열기만 하면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한 온갖 종류의 낯 뜨거운 동영상이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유통되는 세상은 그대로 두고 왜 그 여성에게만 그렇게 가혹하게 법 적용을 하느냐는 울분이다.

직장 내 성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어째서 피해자의 주장은 배척하고 안희정의 사정만 그렇게도 친절하게 살펴주느냐는 분노인 거다. 올봄 들불처럼 타올랐던 미투운동에 법원이 찬물을 끼얹는다는 걱정도 있을 거다. 글쎄, 인류역사상 모계사회가 퇴장하고 가부장사회가 도래한 이래 수만 년 동안 점판암처럼 꾹꾹 눌리고 눌려 마침내 화석이 돼버린 여성 인권에 대한 쌓이고 쌓인 분노가 응축돼 폭발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뜯어봐야 할 대목은 또 있다. 이른바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워마드’가 남성 일반에 대한 눈먼 공격성을 보인대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나. 천주교가 신성시하는 성체를 훼손한 장면을 올렸다거나, 사회 상규에 어그러진 게시물을 올렸다거나 해서 비난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남성이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폭력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미러링’이었다고 주장했다. 글쎄, 그들의 과도한 공격성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행위는 따지고 보면 폭력적인 가부장 사회에 대한 절망이 불러온 일탈이 아니겠냐고 생각할 여지는 없을까. 과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주장을 들은 척도 않는다는 그들의 항변에 일말의 진실은 없을까. 게다가 ‘워마드’가 페미니즘 전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잖나.

적절한 비유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의 반란’을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속 ‘인정투쟁’에 비겨보면 어떨까. 주인은 두려움에 떠는 노예를 복속시켜 노동 결과물을 착취하고 향락한다. 그러나 노예는 거꾸로 노동을 통해 세상을 개조하면서 자아의 독립을 성취한다. 그래서 계속 노예 상태로 묶어두려는 주인에게 자신을 독립적인 주체로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한다. 수만 년간 ‘노예’ 상태에 놓인 여성들이 이제 세상을 변혁하는 한 주체로서 자신의 독립성을 요구하는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성들의 권리 운동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일부 젊은 남성의 심사도 짐작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뜯어보면 남성이라고 별다른 혜택도 없는 판에, 군대니 뭐니 지워진 짐도 적잖은 판에, 취직 전쟁에서도 여성에게 밀리는 판에 왜 여자들이 속을 긁어놓느냐, 뭐 그런 것일 거다. 나는 성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 몰카 찍은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나를 싸잡아 비난하느냐는 울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온존한 마당에 부지불식간에 가해자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여성 평등권 운동이 남성과의 갈등과 대립이란 방식으로 왜곡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성들은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투쟁과 설득의 방식을 찾아내야겠지만 남성들도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대면하고 성찰하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50년 전 남자들의 밥상 밑에서 눈칫밥을 먹던 우리네 어머니의 딸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섰다. 그만큼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거다. 남성과 사회, 국가가 더 열린 마음으로 여성들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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