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공론화의 그늘 /이경식

전국 각지 공론화 러시, 책임 회피 비판도 제기

세제 개혁에 17년 바친 세종 노력이 진짜 공론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대한민국은 ‘공론화 공화국’이다. 적어도 2018년 8월은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하나같이 공론화를 최선의 정책 결정 방법으로 여기고 있어서다. 지난해 실시한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와 최근 끝난 2022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대한 공론화는 그 표본이다. 기획재정부의 규제 개혁, 청주 KTX 오송역의 명칭 변경 등 공론화 대열에 가세한 사안은 현재 10여 개에 이른다. 부산항 북항재개발지역 오페라하우스 건립 중단 여부와 부산 중앙버스전용차로제(BRT) 추가 건설 철회 여부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론화는 여론조사와 달리 참여 시민들에게 해당 사안을 심화 학습시킨 뒤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민주주의의 요체인 만큼 민의 존중 차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다지 흔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입시안 공론화에서 드러났듯이, 정책 결정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교육부의 무책임한 모습 탓이 크다. 세부 평가요소를 조합하기에 따라 입시안이 최대 3000여 개나 나올 수 있는 대입 제도는 전문가에게도 난해한 터라 시민 판단에 맡길 사안이 아니었다. 4개의 시나리오로 압축해도 경우의 수가 많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공론화의 창시자인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두 달 전 우리나라를 방문해 “시나리오 방식으로는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대학의 자율에 맡길 수도 있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론조사 결론을 그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결국 예상대로 현행 대입 제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결론이 도출됐다. ‘공론(公論)’의 입구로 들어가 ‘공론(空論)’의 출구로 나온 셈이다. 그 사이 1년여의 금쪽 같은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 전문가들은 “공론화는 정책 결정의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은 우리 정부에 꼭 필요한 방식”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부와 교복 등으로 공론화 대상을 확대 중이다. 시민이 교육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 교육부’나 다름없다.
부산시도 예외가 아니다. 시는 오페라하우스와 BRT를 공론화에 부치기로 하면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할 것”이라고 했다.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려는 건 권장할 만한 자세이지만, 뒤집어 보면 책임 회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공론화위에 넘기려는 사유를 보자. 시는 기능 중복과 과도한 운영비라고 한다. 오페라하우스는 부산시민공원에 건립하려는 부산국제아트센터와 내년 4월 문현금융단지에 들어서는 뮤지컬전용극장과 공연 기능이 겹친다. 시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가 국제아트센터와 중복 사업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 세 시설을 모두 지을 경우 관객은 분산되고, 운영비가 중복 투입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시는 이미 그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공론화위에 결정을 구하기 앞서 기능 중복과 운영적자 가능성을 예측하고서도 세 시설의 건립을 밀어붙인 공무원들의 안일한 일처리에 눈을 돌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과정을 건너뛰고 공론화위에 오페라하우스를 회부한다면 137억 원의 투자금 등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시도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설치 필요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BRT 역시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공론 군주’로 불리는 조선 세종의 공론정치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피시킨 교수의 방식보다 더 민주적이고 현대적이어서다. 세종의 공론화 노력은 ‘세종실록’에 ‘더불어 의논한다(與議·여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불합리한 세제를 개혁하기 위해 17년간 공론화를 진행했다. 관리가 직접 고을을 답사하며 세금을 매기고 걷었던 인정과세를 비리 여지가 적은 정액세로 바꾸는 일이었다. 세종은 ‘국가재정을 확충하되 백성의 고통은 줄인다’는 공론화 목표부터 설정한 뒤 17만2000명의 백성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어 7만4000명의 반대자를 상대로 집요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세제가 땅의 비옥도와 기후에 따라 등급을 나눠 징세하는 ‘전분 6등, 연분 9등제’다.

세종은 ‘눈높이 소통’만 한 게 아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4군6진 개척 때는 신하들의 반대를 단호히 물리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 대신 신하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책임 정치’를 실천한 리더.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공론 풍요에 드리운 책임 빈곤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 같은 언어이기도 하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부산교통공사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RSS

  1. 1해운대·수영·동래 청약 조정지역 유지
  2. 2미래차 격전지서 ‘국산 신병기’들 베일 벗다
  3. 3부산을 적정도시로 <9> 도시계획의 교과서 포틀랜드
  4. 4“50년 숙원 부산노인회관 건립…실버정책 총괄할 것”
  5. 5박유천, 마약한 적 없다더니…국과수 “다리 털서 양성 반응”
  6. 6U-20 월드컵 뛰러 왔는데…이강인 동료 부상에 짐 쌀 판
  7. 7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2294>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8. 8판 커진 공유 오피스 시장, 지역건설사도 사업 가세
  9. 9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28> 남해·삼천포 앵아리
  10. 10버스조합 - 노조, 주 52시간 시행 협의 평행선
  1. 1 바른미래당 이언주 탈당 심정 “이제는 마지막이 될지도..”
  2. 2이언주, 오후 3시 탈당 기자회견… 영도 출마 가능할까
  3. 3패스트트랙 두고 정치권 일제히 의원총회… 급박하게 돌아가는 여의도
  4. 4김홍일 전 의원 5·18 국립묘지 안장… 이희호 여사는 아들 사망 몰라
  5. 5패스트트랙 민주당 만장일치 추인, 추인 뜻은?
  6. 6오거돈 부산시장-‘투자 귀재’ 짐 로저스, 23일 경제 현안 단독 대담
  7. 7부산 중구, 대청큰마루터 기상전시관 운영협약 및 개관식 개최
  8. 8연구소·직업 활용…사무실 못 내는 원외들의 생존경쟁
  9. 9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5월 서울·봉하서 추모행사
  10. 10한국당 “좌파 독재플랜 목숨 걸고 막아야”, 4당 “시대적 과제…탄핵연대 부활” 역공
  1. 1미래차 격전지서 ‘국산 신병기’들 베일 벗다
  2. 2 산재 예방 모범 기업
  3. 3르노삼성 트위지 ‘이동 커피숍’ 변신…“청년사장님 지원합니다”
  4. 4부산혁신센터, 민간창업카페 입주자 모집
  5. 5르노삼성 시뇨라 사장 “내수 회복·부산공장 정상화 투 트랙”
  6. 6시트로엥, 컴포트 SUV 뉴 C5 에어크로스 출시
  7. 7“산업재해 줄이려면 안전의식 개선해야”
  8. 8 태양산업 정기상 회장
  9. 9베트남 수출상담회서 ‘부산 화장품’ 80만 달러 계약
  10. 10판 커진 공유 오피스 시장, 지역건설사도 사업 가세
  1. 1필리핀 지진 불의 고리 흔들… 마닐라 시민 가슴도 철렁
  2. 2부산대 여자기숙사 침입 성폭행 시도 20대에 징역 10년 구형
  3. 3치매로 인한 식탐..냉면사리에 기도 막혀 사망
  4. 4윤지오와 김수민 작가 갈등 핵심은 윤지오 수익 사업 “거짓말 누가하나”
  5. 5“베트남산 다이어트차 바이앤티 먹지마세요” 2억원치 넘게 이미 팔려
  6. 6김수민 작가 박훈 변호사 선임 ‘이쯤 되면 이슈 전문?’
  7. 7필리핀 규모 6.3 지진 발생 ‘마닐라 흔들’
  8. 8광안대교 충돌 러시아선박 선장 음주·도주 혐의 모두 부인
  9. 9해운대 운봉산 화재 원인은 쓰레기 소각 실화
  10. 10“폐비닐 태우려다 축구장 28개 면적 태워…” 해운대 운봉산 화재 실화자 검거
  1. 1김원석 한화 방출 당시 대화 내용 보니… 감독·치어리더·팬 등 무차별 비난
  2. 2첼시 번리와 무승부… 프리미어리그(EPL) 4위 경쟁 누가 우위
  3. 3첼시 번리와 무승부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가시권… 막판 순위싸움 점입가경
  4. 4U-20월드컵 이강인 돌발 변수……"소속팀 체리셰프 부상에 복귀 검토"
  5. 5LPGA '슈퍼루키' 이정은·KLPGA '루키군단' 누가 셀까
  6. 6U-20 월드컵 뛰러 왔는데…이강인 동료 부상에 짐 쌀 판
  7. 7K리그 내년부터 '동남아 쿼터' 신설…'베트남 더비' 가능할까
  8. 8오승환, 231일 만에 승리투수…추신수 멀티 안타 활약
  9. 9탁구세계선수권 헝가리서 개막…한국, 우승 향해 순항
  10. 10EPL 4개 팀, 물고 물리는 4위 고지전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두 强기업의 즐거운 도시 실험
삼일정신을 다시 바라보다
기고 [전체보기]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센텀 2지구 /이갑준
21세기 과학기술과 부산의 미래 /박태주
기자수첩 [전체보기]
아직 피는 완전히 씻기지 않았다 /신심범
역사 외면한 부산시의 무리수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느린 호흡의 의미
말모이와 국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청와대는 ‘내로남불’ 민심 귀 기울여야 /김태경
부산 해법, 치열하게 논쟁해야 /박태우
도청도설 [전체보기]
나무 의사
군국의 망령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자기 표현의 기술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전병과 갈레트
섬진강의 봄맛 다슬기
사설 [전체보기]
새 대표 선출 공동어시장, 공영화 후퇴하는 건가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추인, 한국당 마냥 반대 안 된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행복, 복지국가, 그리고 비례대표제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다 중한 건 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고난의 역사 견뎌낸 명화
황제의 이중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업인이 알아야 할, 여성들의 정보탐색법
먹방,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암운 드리운 도보다리 회담 1주년
과연 민심이 무섭긴 한 걸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라일락의 계절 4월
연둣빛 봄날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음식의 조화
봄에 마시는 와인, 로제와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개 짖는 소리에 세상을 알다
태극기 흔들며 기뻐 춤을 추다
  • 2019 다이아모든브리지 걷기축제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19부산하프마라톤대회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