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연대장, 3사단장을 대신하여 귀 연대에 북진명령을 내린다. 38선을 돌파하라. 38선은 이 순간부터 없어진다.” 1950년 10월 1일 오전 11시25분, 김백일 당시 1군단장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받고 김종순 3사단 23연대장에게 북진명령을 내렸다. 그해 9월 17일 경북 포항 형산강 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한 3사단은 13일 만에 260㎞를 진격해 강원도 강릉을 지나 38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3사단의 선봉은 23연대였다. 23연대는 38선을 넘어 첫 점령목표인 양양을 향해 나아갔다. 정일권 회고록에 나오는 얘기다.

북진한 국군은 이듬해 1월 4일 중공군에 밀려 38선 이남으로 다시 후퇴했고, 북한군 역시 전황의 격랑에 휩쓸려 38선을 오르내렸다. 김 1군단장의 말처럼 그 와중에 38선은 없어졌다. 하지만 ‘선(線)’은 사라지지 않고, 248㎞의 휴전선으로 대체되었다. 휴전선임을 알리는 1292개의 표지판도 500ｍ 간격으로 세워졌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만은 예외였다. 유엔과 북한의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은 JSA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그랬던 JSA에도 1976년 8월 18일 북한 측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한 뒤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4·27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 잡고 넘나들었던 그 선이다.

‘JSA 군사분계선’을 없애고 남북 경비병이 자유왕래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남북은 지난달 31일 열린 제9차 장성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성사될 경우 JSA는 42년 만에 자유지대로 되돌아간다. JSA에서나마 작은 ‘통일세상’이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분단의 선긋기는 서로의 눈에 색안경을 씌운다. 자의적으로 상대의 정보를 취사선택하거나 왜곡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70년 분단이데올로기가 그랬다.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북미가 각자 그어놓은 이데올로기의 선을 뛰어넘거나 지우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 정부와 교섭해야 한다”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의 말이 그래서 더욱 요긴하게 다가온다. JSA 군사분계선 철폐가 그렇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