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당시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에 의한 감청이었다. 육군본부의 지휘부 동향과 군부대 이동 상황, 교신내용 등을 보안사 감청시설로 즉시 파악해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 이런 사실은 1994년 검찰 수사 결과로 일반에 처음 알려졌다. 그 이듬해에는 12·12 당일 밤 긴박했던 군 수뇌부의 통화 육성을 담은 보안사 감청기록이 한 월간지를 통해 공개돼 큰 파장이 일었다.

과거 보안사의 감청은 엄청난 위력을 떨쳤다. 군내에서 오가는 통신 내용과 정보가 감청 그물망에 그대로 포착됐으니 말이다. 1979년 10·26 사태 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려던 계획도 그 감청망에 걸려들었고, 이후 전두환의 12·12 반란 주도로 이어졌다. 2005년 방영됐던 MBC의 41부작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보안사의 감청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돼 눈길을 끌었다.

감청(監聽)은 타인의 통화를 몰래 엿듣는다는 점에서 도청(盜聽)과 동일한 행위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에서 하면 감청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청이 된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7항에 감청이 명시돼 있다. 법률 용어로는 ‘통신제한조치’인데, 통상 도청과 구별해 감청이라 부른다. 검찰이나 정보수사기관 등이 범죄 수사, 국가 안전보장 차원에서 합법적 절차를 밟아 감청할 수 있다.

기무사령부가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국방장관의 통화내용을 감청했다는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의 폭로가 그제 나왔다. 기무사 내부 제보라는 얘기인데, 그게 맞다면 군통수권자와 지휘권자까지 사찰한 것이니 말문이 막힌다. “통상의 첩보 수집과정에서 기무사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기무사 도·감청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물론 기무사의 감청이 다 불법은 아니다. 국가 안보, 간첩 수사 등과 관련해 허용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군부 쿠데타 방지에 있다. 그 점에서 대통령과 장관의 국정 토의를 엿듣는 걸 정상적인 임무수행으로 보기는 힘들지 싶다. 12·12 사태를 연상시키는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함께 이번 폭로에 대해서도 합동수사단이 진실을 명백히 밝혀내는 게 마땅하다. 기무사 개혁과 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