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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노회찬·최인훈이 꿈꾼 유토피아 /이승렬

같은 날 영면한 두 ‘거인’, 문학·정치 인생길 달라도 나눔과 자유 지향점 닮아 한 시대의 ‘표상’ 삼을 만

남긴 ‘화두’는 후세들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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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청포도가 익는 시절’로 노래했던 7월, 대한민국은 두 명의 ‘거인’을 잃었다. 그것도 같은 날, 불과 1시간여의 시차를 두고서 말이다. 지난 23일 떠난 정치인 노회찬(62)과 소설가 최인훈(82). ‘한 시대의 표상’으로 살다 간 이들의 발자국이 크고 깊다. 감히 ‘거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다, 수많은 ‘남은 자’들이 눈물로써 “이 세상은 이제 남아 있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편히 쉬시라”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도 두 사람의 삶이 깜깜한 밤하늘을 밝힌 ‘샛별’ 같았기 때문이다.

최인훈과 노회찬. 문학과 정치의 길을 걸었으니 인생역정이 다르다. 하지만 닿고자 한 종착지는 다르지 않았다. 바로 ‘유토피아(Utopia)’이다. 지상낙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유토피아는 흔히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나라’로 불린다. 바꾸어 말하면 ‘꿈꿀 수는 있으나 실현할 수는 없는 이상향’이다. 유토피아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이들은 그 길을 고집했을까? 개인의 행복만 추구하며 대중의 아픈 현실을 외면하기엔 너무 깨끗한 양심을 가졌기 때문일까.

4·19 혁명의 여진이 남아 있던 1960년 10월 당시 24세의 무명작가 최인훈은 잡지 ‘새벽’에 실린 소설 ‘광장’과 함께 비로소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평생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남한과 북한, 그리고 양 체제가 ‘신’으로 떠받드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평소 정치를 경멸하던, 서울의 대학생 이명준은 해방 직후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친일경찰 출신인 형사에게 불려가 구타당하기 일쑤다. 아버지가 있는 북한에는 ‘때 묻지 않은 광장’이 있을까. 이명준은 북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소설 말미 이 부분이 나온다. ‘고기 썩는 냄새가 역한 배 안에서 물결이 흔들리다가 깜빡 잠든 사이에, 유토피아의 꿈을 꾸고 있는 그 자신이 있다’. 소설 ‘광장’에서 유일하게 ‘유토피아’라는 표현이 나온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에도 유토피아는 없었다. ‘당’이 주인공이고 개인은 없었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으며,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은’ 남한과 다를 게 없었다. 이명준의 유토피아는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는 독백을 통해 드러난다. ‘게으를 수 있는 자유’와 같은 ‘속 편한’ 세상을 찾아 이명준은 전쟁포로 석방 때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작가 최인훈이 꿈꾼 유토피아는 결국 ‘개인과 공동체가 광장에서 화해하면서도 사적 공간으로서 밀실 또한 존중되며, 이념 대결 없이 사랑할 자유가 넘치는 나라’였다. 그는 전후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남·북한 체제를 동시에 비판한 작가다. 평론가 김현(1942~1990)이 그를 일컬어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가 최인훈이 위대한 이유는 동시대인들에게 용감하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일 게다. 그는 엄혹했던 남북 대립의 시대에 과연 인간 앞에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며, 우리가 지향할 유토피아는 어떤 곳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것도 민간인도 아닌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말이다. 불굴의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평생 유토피아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그의 산문집 제목도 ‘유토피아의 꿈’이다.

한 세대 후에 태어난 노회찬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꿈 꿀 수밖에 없는,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꿨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 서열과 학력 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나라. 토마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면서도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서민의 눈높이에서 서민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정치를 서민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대체 불가’ 정치인 노회찬의 평소 염원이 담겨 있다. 그는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누군가 공부를 좀 못 한대서 비정규직이 되고, 또 그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를 좀 더 가질 수 있고,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여유도 생겨서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이런 ‘거창한’ 유토피아의 꿈 밑자락에는 나눔과 공동선에 대한 신념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이민자 수용 갈등이 그가 지향한 유토피아의 꿈과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풀지 못한 무거운 ‘화두’를 던져놓고 두 ‘거인’이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슬픔을 갈무리하고 스스로 용기를 다져야 할 때다. 나눔과 공동선,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가 녹아든 유토피아의 건설, 그 ‘대안 없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논설위원 bungse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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