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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응급실을 좀 비워두자 /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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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29 19:45:45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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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가 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소병원으로 파견을 나갔다. 주로 야간에 응급실 근무를 전담하였는데 주변에 술집이 많아서 매일 밤 소란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그날도 맥주병에 맞아 이마가 찢어져 온 남자에게 소독을 하고 바늘로 꿰매려는 순간, 고함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국소마취를 하였는데도 따끔거리는 느낌이 있었는지 아프다고 화를 낸 것이다. 피할 겨를도 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고, 소독된 기구들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곳에 일하는 의사가 나 혼자뿐이어서 감정이 상해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환자를 달래서 치료를 마쳤지만 그때의 일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구타를 당해서 코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빨리 진료하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의료행위는 서로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에게 이렇게 폭력을 가한다면 누가 선뜻 진료에 나설 것인가. 의사단체에서는 크든 작든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응급실의 상황이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딜 가더라도 요즘 응급실에는 소란이나 난동에 대해 법 집행을 엄격히 한다는 포스터를 다 붙여놓고 있지만 구호에 그칠 뿐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응급실은 늘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물론 누구든지 위급하니까 응급실로 간다. 그런데 모두 자신이 제일 위급하다고 생각한다. 몸 어딘가가 갑자기 불편하면 진찰을 받기 전까지는 심각하다고 느낄 수 있고, 환자나 보호자가 안절부절못하고 조급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보면 꼭 응급실로 오지 않아도 되는데 오는 경우가 꽤 있다. 집에서 상비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개인 일로 외래진료를 놓쳐도 응급실을 찾는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는 오는 환자 상태의 경중을 따지거나 급한 순서를 정해서 볼 수밖에 없다.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다.

일단 병원에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한 정도를 파악해서 빨리 조치할 환자를 정한다.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서는 건 당장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사람, 심근경색이나 뇌혈관 질환 등이다. 이런 병은 ‘골든타임’이란 게 있어서 분초를 다투어 지체 없이 치료를 시작해야만 한다. 위나 장의 천공으로 생기는 복막염, 중증의 외상이나 출혈이 있을 때도 응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외에도 신속하게 손을 써야 할 대상이 수두룩하지만 시간을 끌면 상태가 나빠지거나 생명을 잃게 되는 환자가 최우선이다. 또한 대부분의 응급실은 인력이나 장비가 한정되어 있어서 상태가 중한 환자가 오면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가도 잠시 손을 놓고 달려가야 한다. 응급실에서 생기는 소란과 분쟁은 이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병원엔 하루 평균 130명 정도의 환자가 응급실에 온다. 요즘 주말이면 물놀이객이 많아서 두 배로 늘어난다. 그중에서 대략 30명 정도가 입원을 하고, 나머지는 간단한 처치나 약 처방을 받고서 귀가하게 된다. 실제로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위중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가벼이 할 수는 없겠지만 큰 규모의 병원이라면 당연히 생명이 걸려있는, 더욱 위급하고 중한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또 그런 환자들은 고난도의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하며 긴 시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늘 북새통이다. 환자가 한꺼번에 몰리면 의료진은 더욱 바빠진다. 이 와중에 치료가 시급하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일분일초의 시간에 의해 생사가 결정되는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정부에서는 덜 급하거나 경증의 환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해결하고 병이 심각하다면 큰 병원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응급의료 전달체계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제발 바라건대 응급실만큼은 진짜 응급환자를 위해 좀 비워뒀으면 좋겠다.

해운대백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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