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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사서 하는 고생 /김정애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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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27 20:50:1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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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함께 책 읽기를 한 아이들에게는 자기 글을 묶은 책을 만들어주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해줄 수는 없다. 기준을 정했는데, 6학년 끝날 때까지 함께 책을 읽은 경우만 묶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분량도 어느 정도는 모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3년, 적으면 2년 동안 쓴 글을 묶는다. 아이들이 4, 5학년 때는 틈나는 대로 내가 컴퓨터에 글을 입력하고 6학년이 되면 스스로 입력하게 한다. 글을 다 모으면 대강 교정보고 간단하게 편집하고 프린트한다. 그걸 복삿집에 들고 가면 플라스틱 표지를 대서 스프링으로 묶어준다.

4학년이면 감상문을 꽤 힘들여 쓴다. 그렇게 쓴 글은 서로 읽고 들으면서 나눈다. 글을 쓴 공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난다. 공책이 늘어날 때마다 테이프로 붙여준다. 공책이 두툼해질수록 뿌듯해할 것 같은데, 그게 생각과 조금 다르다.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들도 분명히 뿌듯해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공책을 잃어버리기가 예사고, 분명히 글을 쓰긴 썼는데 어디에 썼는지 기억을 못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책 읽기 글쓰기가 귀찮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공책뿐 아니라 다른 소지품도 너무 많이 흘리고들 다닌다. 많으면 많을수록 귀하게 여기지 않는 어떤 정서가 실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글을 묶어 책을 만들어주기로 한 이유는 그것이다. 프린트되어 묶인 자기 글은 아무래도 잘 보관하게 될 테니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어 어릴 적 자기 글을 문득 다시 만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경험일 테니까.

지금은 지난 2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책을 만드는 중이다. 벌써 끝냈어야 할 일이었는데, 그 밖에도 무수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한여름까지 그 일이 밀렸다.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옆방 잠잠이 선생님과 책 읽기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내가 약속한 일이고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 이번 방학 안에는 완성하려고 작정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그 중1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방학 첫날 밀린 책 읽고 밀린 글 쓰러 아침 일곱 시에 책방에 왔다가, 할 일을 끝내고 막 나가려는 참에 내가 오는 걸 보고 우르르 내 방으로 몰려온 거였다. 아이들은 바로 옆방에서 와놓고는 어디 다른 동네에서라도 온 것처럼 새로워했다. 또 올 2월까지 지냈던 곳을 몇 년 만에 찾아온 것처럼 신기해했다. 동생들이 만든 달력의 시를 꼼꼼하게 읽어보며 ‘귀여워!’를 남발하는 것이 몇 년 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 모습과 흡사하다. 그중 한 녀석은 나 없을 때 가끔 스윽 들러보고 가기도 했다면서 그런다. 웃기는 녀석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어찌나 오자가 많은지 힘들어 죽겠다. 끝이 안 난다. 끝이 안 나.”

하염없이 밝고 즐거운 녀석들에게 나도 모르게 푸념이 나왔다. 말을 하고 보니 이건 꼭 오랜만에 찾은 자녀들에게 하는 부모님의 투정 같다.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밭일을 하고 와서는 힘들다 하시는, 그래놓고 자식들이 안마라도 해주면 입이 함박꽃만 해지는….

“히히히!”
미안함을 담아 쑥스럽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났다.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면서 투정을 부린 것은 아이들이 나를 내려다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키를 넘어선 지 오래된 아이 여럿이 나를 내려다보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으니. 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자 중1들은 올 때처럼 우르르 몰려나갔다. 뒷모습도 밝고 당당해서 마음이 흐뭇했다. 한편으로는 얼른 마무리해서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희들 글 잡고 이 더운 여름에 뜨끈한 컴퓨터와 씨름할 일이 아니다’ 싶었다.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에게 얼른 넘겨주고 말아야지.

그런데 생각해볼 것 하나. 교정을 꼭 봐줘야 하나. 어디 발표할 글도 아니고, 자기 글 자기가 모아 보는 건데, 내가 뭐하러 힘들게 교정을 하고 있지? 공책에 적어놓은 그대로 옮겨만 놓아도 될 일이고, 입력을 잘못했으면 그것대로 놔두면 될 일인데. 나중에 자기 글을 보고 ‘내가 어릴 때 이랬구나’ 할 텐데, 그러면 내가 진실을 심하게 왜곡하는 셈인데….

이런 생각은 지나치게 오자가 많은 한 녀석 때문에 하게 되었다. 오자도 그냥 오자가 아니다. 손가락의 실수가 아니라 인지의 부족이다. ‘ㅔ’와 ‘ㅐ’를 혼돈했기 때문에 생긴 오자가 한 바구니나 된다. 그런데 이런 걸 내가 다 고쳐놓으면 스스로 알 기회를 뺏는 게 되지 않을까.

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글 입력을 스스로 하게 했듯이, 자기 글 교정도 스스로 하게 해야겠다.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공부가 될 테고, 나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 그리고 무엇보다 일도 좀 줄여야지. 내년 여름은 더 더울지도 모를 일이니까.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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