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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명아주는 콩밭에 많은 법 /임형석

가짜 논문 학술대회, 한국인 학자들이 가득

성과·점수만 강조하는 우승열패 구조가 문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25 19:39:2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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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해서 좋아한 정치가의 비보를 들은 것은 폭염에 그을린 기압계만큼 몸과 마음이 굼뜬 월요일 정오 무렵이었다. 비라도 한줄기 내려야 청량감이란 낱말이 있었구나 싶은 어질한 이마에 땀만 스몄다. 아, 그랬구나. 통증의 아린 열기는 서서히 밀려든다. 이놈의 괴물은 몇 개나 목숨을 앗아가야 끝을 내려는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제야! 절로 탄식한 것은 모 지상파 주요 뉴스가 전날 보도한 기사를 뒤늦게 본 지난 20일이다. 사이비 학술단체 와셋이 조직한 사기성 짙은 국제학술대회가 횡행하고 여기 4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다녀갔다는 소식. 학술이 업인지라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부지런히 지워도 내 메일함을 다시 채우던 국제학회 참여 권유 메일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야 왜?

기사는 연구 윤리라는 사회 규범을 조심스레 건드린다. 물론 대학을 위시한 연구 기관에 몸을 담고 있는 구성원은 연구 윤리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게 되어 있다. 심지어 표절 예방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기마다 대학생에게도 공지하도록 되어 있다. 한마디로 지적 도둑질이나 지적 사기는 안 된다는 말씀. 하지만 내 이해의 한도 안에서 이번 일이 개인 윤리만 문제인 건 절대 아니다.

언제 어떤 방식일지 몰랐어도 스캔들이 터지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개인 윤리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인 줄 알았기 때문에. 십오륙 년 전 일이다. 지금도 학계를 좌우하는 당시 ‘큰손’은 학회 지원금 배분을 규율하는 방식을 하나 고안한다. 너희는 등재지냐 등재후보지냐? 주변에선 이런저런 말을 수군거리며 몇 점, 몇 점 점수 따지기 바빴다. 등재지와 후보지라는 낙인 하나에 학회들은 서울과 지방으로 찢어발겼고 역사와 전통은 짓밟혔으며 학자의 고심과 창의는 점수 앞에 얼굴을 붉혔다.

돌이켜 보니 학술의 황혼은 이때 시작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완만하며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았지만 학계는 마치 현대 불교가 겪은 불교 정화운동처럼 학술 정화운동에 휘말린 것이다. 여기에는 우승열패, 승자독식의 제도를 만든 음모자뿐 아니라 먹잇감 앞에 군침 흘리며 구조에 순응해 덕을 본 부역자나 앞잡이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정권에 따라 요동치는 학술. 그것을 좌우한다는 그 재단 이사장은 정권 입맛에 따라 낙점되는 자리다. 등재지와 후보지 장사로 재미를 본 정권이 바뀌자 둘이었던 재단이 하나가 되는 일이 생겼다. 아, 몰아주기로구나 싶었다. 과거 문과에 배정되던 예산을 줄이고 이과로 몰아주는 일은 예상처럼 이제껏 계속이다. 학문 특성의 차이를 호소해도 당장 성과를 내놓으라는 으름장, 성과지상주의가 정권과 함께 득세했다. 여기 무슨 인문학 따위가….
성과 지상주의의 다른 얼굴이 논문 지상주의다. 과학 발전의 역사에서 논문은 우선권을 해결하는 증거 자료, 학회와 학술지는 보증인 역할을 맡고 있다. 실용적인 목적에서 고안된 학술 장치라는 말이다. 하지만 논문은 숱한 형태의 글쓰기의 일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논문은 단시간에 주장을 유포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글쓰기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학술의 유일한 글쓰기 방식은 아니다.

등재지와 후보지 장사가 재미 없어질 무렵 전면적인 한류와 융·복합을 내세우는 정권이 들어섰다. 영어로 논문을 쓰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알고보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무슨 3분 즉석식품도 아니고 2분이면 뚝딱 가짜 논문이 완성된다. 그리고 모든 학술 분야를 망라해서 와셋 같은 단체가 조직한, 따라서 융·복합은 저절로 성립하는 사기 국제학술대회에 제출하면 한류도 오케이다. 와셋을 보도한 기사의 그래프 하나를 보니 한국인 발표자가 폭증한 시점이 공교롭게 2014년부터다.

그러면 지난 세월 당신은 뭘 했느냐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내키는 대로 책을 썼다. 학회 발표는 한 해에 두 번씩 꼭 했어도 논문은 2013년 이후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십 년 번역서가 되었든 저작이 되었든 거의 해마다 꼬박꼬박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서 나는 논문지상주의자에게 빵점짜리 학술 인생,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인간이 되고 말았다. 물론 내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말이다.

여름 농사 고역 중 하나가 땡볕 아래 쭈그리고 콩밭 매기다. 오죽하면 칠갑산 노래까지 나왔을까. 콩밭을 매다보면 제일 많은 잡초가 명아주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잘 자라 굵어지면 가벼운 청려장 지팡이도 만들지만 콩밭엔 잡초다. 얼핏 보면 잎사귀가 닮아 가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비슷하지만 아닌, 사이비가 많은 상황을 가리킬 때 콩밭에 명아주라는 말도 생겼을 테다. 와셋 보도가 나가고 애꿎은 목숨이 달아나고 내가 이 글을 쓴들, 죄다 그저 해프닝이지 싶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변화를 기대한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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