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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공룡 기무사의 월권 불감증

계엄령 문건 논란 핵심은 권한 넘는 업무 관여에 스스로도 무감각해진 것

이런 착각과 오만 벗는 게 기무사 개혁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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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機務). 요즘 가장 핫한 단어지만 여전히 생경하다.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말인 탓이다. 다들 어렴풋이 뜻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내친 김에 사전을 들췄다. 첫 번째로 ‘근본이 되는 일’이다. 다음으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란 의미란다. 오호, 이런 대단한 뜻을 가졌다니. 죽어 있던 단어를 살려낸 건 국군기무사령부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이 드러난 국군보안사령부가 개혁을 한답시고 1991년 이름을 바꾸면서다. 이후 30년 가까이 숱하게 기무사란 말을 들어왔지만 솔직히 그 뜻을 자세히 들여다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무사 또한 이 두 가지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구한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과 ‘군국기무처’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고 친절히 덧붙이기까지 한다. 마치 구한말 도탄에 빠진 나라의 개혁을 담당하던 기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업무적으로야 기밀한 일을 담당한다는 두 번째 의미가 가깝겠다. 하지만 ‘통리기무아문’까지 끌어낸 걸로 미뤄, ‘근본이 되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강해 보인다. 그 ‘근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 기무사의 이후 행보는 전자의 의미에 끊임없이 다가가려 한듯하다.

기왕 명칭의 유래까지 들먹인 마당이니, 기무사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도 살펴보자. 대통령령인 국군기무사령부령 1조는 ‘군사보안, 군 방첩 및 군에 관한 첩보의 수집 처리 등에 관한 업무 수행’을 설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직무 범위는 군인과 군무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조항이지만 여지껏 우리 기억에 각인된 기무사의 활약상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군사보안이나 방첩 업무의 특성상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도 적지 않을 테다. 그렇다 해도 민간 영역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과도하게 넓은 오지랖이 늘 말썽이었다.

최근 논란인 촛불집회 당시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그 정점이다. 하지만 문건의 성격을 두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한쪽에선 ‘쿠데타’ ‘내란 음모’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군 동원계획으로 미뤄 실행을 위한 준비계획이라는 거다. 다른 쪽에선 ‘단순히 기무사의 월권일 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유사시에 대비한 통상적인 참고 문건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독립수사단이 꾸려졌으니 결과는 지켜 볼 일이다.
이처럼 시각이 갈리지만 분명한 건 기무사가 월권을 했다는 점이다. 무시무시한 쿠데타 준비였든, 관행적인 문서 생산이든 본연의 업무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국가 위기 때 비상조치를 검토하는 군의 조직은 당연히 합동참모본부다. 탄핵 기각 시 예상되는 촛불집회 격화가 계엄령 선포의 대상인지 여부는 차치하고, 이를 검토하는 주체는 결코 기무사일 수 없다. 비록 실행계획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기왕 문건의 존재가 드러난 판이니 최소한의 사실만 인정하자는 심산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병력 동원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기무사가 공룡화됐다는 게 이번 사안의 본질이다.

이런 무소불위의 기무사이니 무슨 일인들 못 했겠나. 국내 주요 이슈에 대한 댓글 등 여론조작 활동은 돌이켜 보니 새 발의 피라고 할 만하다. 세월호 유족 사찰도 모자라 최근엔 세월호 희생자들의 수장(水葬)을 건의했다는 문건도 공개됐다. 선체가 인양되면 정부를 향한 비판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도 모자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담화 발표 때 좀 더 감성적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깨알 같은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이쯤 되면 무엇이 본연의 업무인지 자신들도 헷갈릴 만하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보수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공룡처럼 비대해진 조직이 문제였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끊임없이 민간 영역을 침범하며 온갖 일에 관여했다. 막대한 특수활동비는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조금씩 군 밖으로 눈을 돌리면서 스스로 그게 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말하자면 월권 불감증인 셈이다. 때로 문제가 불거지면 오랜 관행이었을 뿐이라고 둘러댄다. 이렇게 무뎌질 대로 무뎌진 월권 불감증은 결국 계엄령 검토 문건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게 만들었다.

수사 결과에 따라 기무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군사보안과 군 방첩 업무라는 본래 기능은 어떤 형태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간 기무사는 군 본연의 업무와는 무관하게 나라의 ‘근본이 되는 일’을 수행한다는 특권 의식 속에 기형화됐다. 그 근본이라는 것 또한 보수정권의 뒤틀린 가치관이었을 뿐이다. 오랜 관행에 스스로도 잘 느끼지 못하는 이런 착각과 오만에서 벗어나는 게 기무사 개혁의 요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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