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여름을 이기는 방법 /정일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3 20:43:47
  •  |  본지 19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무덥고 푹푹 찌는 여름이 계엄군처럼 도시를 점령했다. 속수무책이다. 계엄령 발동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계절의 정변’이다. 장마 덕분에 여름의 시작은 시원했고, 또 태풍 ‘쁘라삐룬’의 경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싱그러운 7월의 맛보기는 짧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 뒤를 이어 고기압과 함께 무더위가 찾아왔다. 원래 제 자리가 여기인 것처럼 한반도에 똬리 틀고 버티기, 굳히기에 들어갔다. 더위가 8월까지 계속될 것이라 하지만, 언제 이 계엄이 해제될지는 기상청도 모른다. 오직 하늘만이 안다. 계엄의 구호는 하나다. ‘한낮에는 찜통더위, 밤에는 열대야!’ 대항할 수가 없다.

여름 계엄군의 무기는 오직 밤낮 없는 무더위뿐이다. 어디에서 계속 보일러를 돌려 더위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 한낮 기온이 40도 이상을 기록할 것이다,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유언비어에 대부분 긍정적이다.

필자는 몇 년간의 여름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견뎌왔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자신이 없다. 일찌감치 항복하고 에어컨과 동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국가의 전력난을 걱정하지만, 여름이 끝난 뒤 터질 전기세 폭탄을 더 걱정한다. 이 여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정답이 없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 이제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화려한 별장이 아닌 한적하게 따로 지은 ‘별서(別墅)’정도면 행복하겠다. 여름에는 산 깊고 물소리 좋은 곳에,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바닷가에 오두막을 가지고 한반도를 공격하는 이 더위를 피해 유유자적하고 싶다.

올여름만 더운 것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역시 뜨겁도록 더웠다. 인근 밀양이 39.3도, 경주가 37.9도 더위가 찾아왔으니 올핸 40도를 기록하는 도시가 즐비할 것이다.

우리는 더위의 잔혹사를 쉽게 잊는다. 76년 전 대구가 40도를 기록했다. 1994년엔 슈퍼엘니뇨의 등장으로 6월부터 9월 중반까지 무더위가 이어졌다. 그해 온열 질환 사망자가 3384명이나 됐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뿐, 지구를 식히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름이 낭만적이었던, 기다려지던 계절인 때가 있었다. 학창시절,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록밴드 ‘키 보이스’의 노래 ‘해변으로 가요’를 들었을 때 나는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키 보이스는 여름 노래를 많이 불렀다. ‘해변으로 가요’ 외에 ‘정든 배’를 기억하고 있다. 노래가 여름 무더위를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노래는 따라 부르기도 가사를 기억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 더운 것은 아닌지.

부산 중앙동 시절,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 앞에 서 있다/바다로 가는 푸른 신호를 기다리며/중앙동 플라타너스 잎새 위에’ ‘여름 편지’를 쓰던 기억 또한 남아 있다. 곳곳에 시원하게 냉방된 카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얼음 빙수, 아이스크림이 준비돼 있지만 나는 여름 편지를 다시 쓰지 못하고 있다. 이미 여름에게 스스로 항복한, 자포자기가 시 한 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름엔 소나기처럼 좋은 선물이 없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지만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 가고나면 천지간에 서늘한 기운이 일었다. 요즘은 소나기조차 귀하다. 소나기가 멀리서 쏴아-하고 몰려오면 외할머니는 어린 나와 이종사촌형을 발가벗겨 마당에 나가 소나기를 맞게 했다. 그리고 비누를 묻혀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여름 소나기는 자연 샤워기였던 셈이다. 소나기보다 더 시원한 샤워기가 욕실에 있지만 더위에 지쳐 씻는 것조차 귀찮다.

아파트란 이름의 ‘닭장’은 사람을 사각형 안에 가둬놓고 서서히 시멘트를 달군다. 사방에서 열기가 뜨거워지고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그런들 덥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안에서 탈출구나 비상구를 찾아야 할 때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책읽기’로 여름더위를 이길 수 있다. 책읽기가 아니라 해도 무엇인가에 몰두하다 보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삼매경(三昧境)은,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다. 그런 경지가 여름을 이길 수 있다. 책을 읽는데 덥다, 춥다는 잡념에 불과하다. 필자는 읽고 싶은 책은 여름을 위해 아껴 둔다. 그리고 꼼꼼하게 읽다보며 많은 것을 얻는다. 책읽기 모임도 좋다. 카톡 독후감을 나누며 동락(同樂)하면 더 좋다.

이 무더위에 보양삼매는 권하고 싶지 않다. 삼복에 단 한 번 빠지지 않고 보양식을 찾는 무리가 있다. 보양 과잉이 더 덥게 만든다. ‘복(伏)’ 자의 생각부터 바꾸자. 사람(人)이 더위에 지친 개(犬)에게 시원함을 선물하는 날로 생각하자. 더위를 나누고, 시원함을 나눌 때, 이 여름이 시원해질 것이니!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RSS

  1. 1근교산&그너머 <1122> 섬 산행(2) 울릉군 울릉도 성인봉
  2. 2“에어부산 지역기업화” vs “대기업 인수가 바람직”
  3. 3부산 수학문화관·온천2초 설립 본궤도
  4. 4탱탱 달달한 독도새우…트럼프 만찬 오른 그 맛 여기 있소
  5. 5“르노삼성 노사 갈등에 일부 협력사는 100명 감원”
  6. 6삼성,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투자
  7. 7깜찍 이미지 질리셨죠? 트와이스 도발적 변신
  8. 8기장군 “기장~장안 송전선로 지중화를”
  9. 9[조재휘의 시네필] 히어로 장르의 황혼을 바라보며
  10. 10백업 오윤석·허일의 반란…거인, 시련 속 희망가
  1. 1사보임 뜻 뭐길래… 오신환 의원 “사보임 거부”
  2. 2하태경, 이언주 탈당에 “패스트트랙 막을 여지 있어”
  3. 3문희상 임이자 성추행 논란, 한국당 현수막 들고 등장… ‘자작극’ 의혹까지
  4. 4문희상 저혈당 쇼크, 병원행… 이은재 사보임 관련 “사퇴하세요” 직후 추정
  5. 5김관영 “오신환 국회 사개특위 위원 사임계 제출”… 오신환 “사임 의사 없다”
  6. 6임이자, 경기대 법학과·한국노총 출신·자유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
  7. 7이은재 또 “사퇴하세요!”… 문희상 국회의장 당혹
  8. 8자유한국당 “문희상 의장, 임이자 의원 신체접촉…고발할 것”
  9. 9 오신환 “공수처 패스트트랙 반대”… 캐스팅보트 지목 이유는?
  10. 10오신환 “패트트트랙 반대표 던지겠다” 새로운 변수 급부상
  1. 1“에어부산 지역기업화” vs “대기업 인수가 바람직”
  2. 2“르노삼성 노사 갈등에 일부 협력사는 100명 감원”
  3. 3삼성,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투자
  4. 4대기업 제치고 부산·경남 재개발 잇단 수주…차세대 지역 건설사 부상
  5. 5작지만 똘똘한 아파트 ‘베스티움’…숲세·역세권에 합리적 가격까지
  6. 6참이슬 출고가 65원↑…하이트진로 내달 인상
  7. 7부산 제조업 경기 바닥 찍었나…BSI 7년9개월 만에 호전 전망
  8. 8금융·증시 동향
  9. 9주가지수- 2019년 4월 24일
  10. 10바야흐로 ‘건면 시대’…농심 녹산공장을 전진기지로 육성
  1. 1김수민 작가 “윤지오 증언탓 장자연 유족 패소”… 윤지오 카톡 공개
  2. 2김수민 작가 “故 장자연 이용” VS 윤지오 “카톡 조작”
  3. 3대구 전투기 갑작스런 전투기 소리에 시민들 불편 호소
  4. 4김수민 작가와 윤지오 대립… 고 장자연 사건 다른 방향으로 전개
  5. 5‘윤지오와 공방’ 김수민 작가는 누구?…‘혼잣말’ 저자·활발한 SNS 활동
  6. 6남구 문현동 음주운전 의심 차량, 보행자 등 들이받고 전복… 음주측정 거부
  7. 7삼성 채용, 오늘(24일) 인적성 발표…다음 일정은 면접
  8. 8윤지오 스마트워치 미작동, 조작미숙 탓… 김수민 작가 카톡 논란
  9. 9박훈 변호사, 김수민 작가-윤지오 공방 참전 “‘장자연 리스트’ 어떻게 봤나”
  10. 10‘자사고 재지정 갈등’ 상산고등학교는?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 설립·서울대 40명 합격
  1. 1최지만 “개인적 문제 자리 비워” 누리꾼 “미국 귀화?”
  2. 2‘반갑다 토트넘 홈구장’ 손흥민, 브라이튼전서 시즌 최다골 노린다
  3. 3토트넘 브라이튼전 1-0 승리 사진으로 다시보기
  4. 4토트넘vs브라이튼… 손, 맨시티전 아픔 달래나
  5. 5'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6월 10일 AFC서 복귀전
  6. 6토트넘 브라이튼전 승리 귀중한 승점 3점 따내… 프리미어리그(EPL) 4위 경쟁 앞서
  7. 7사우샘프턴 롱, 7.69초 만에 골맛 'EPL 역대 최단시간 골'
  8. 8여자핸드볼 간판 류은희, 프랑스 파리92와 2년 계약
  9. 9손흥민, 새 구장 연속 공격포인트 스톱…최다골도 다음 기회에
  10. 10백업 오윤석·허일의 반란…거인 ‘시련 속 희망가’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두 强기업의 즐거운 도시 실험
삼일정신을 다시 바라보다
기고 [전체보기]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센텀 2지구 /이갑준
21세기 과학기술과 부산의 미래 /박태주
기자수첩 [전체보기]
아직 피는 완전히 씻기지 않았다 /신심범
역사 외면한 부산시의 무리수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느린 호흡의 의미
말모이와 국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청와대는 ‘내로남불’ 민심 귀 기울여야 /김태경
부산 해법, 치열하게 논쟁해야 /박태우
도청도설 [전체보기]
박찬호의 ‘한만두’
나무 의사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자기 표현의 기술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기장멸치식해와 엔초비
전병과 갈레트
사설 [전체보기]
문제투성이 김해신공항, 총리실 검증 서둘러야
북·러 정상회담 비핵화 협상 긍정적 발전 계기되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행복, 복지국가, 그리고 비례대표제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다 중한 건 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고난의 역사 견뎌낸 명화
황제의 이중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업인이 알아야 할, 여성들의 정보탐색법
먹방,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암운 드리운 도보다리 회담 1주년
과연 민심이 무섭긴 한 걸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라일락의 계절 4월
연둣빛 봄날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음식의 조화
봄에 마시는 와인, 로제와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개 짖는 소리에 세상을 알다
태극기 흔들며 기뻐 춤을 추다
  • 2019 다이아모든브리지 걷기축제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19부산하프마라톤대회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