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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여름을 이기는 방법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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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13 20: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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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푹푹 찌는 여름이 계엄군처럼 도시를 점령했다. 속수무책이다. 계엄령 발동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계절의 정변’이다. 장마 덕분에 여름의 시작은 시원했고, 또 태풍 ‘쁘라삐룬’의 경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싱그러운 7월의 맛보기는 짧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 뒤를 이어 고기압과 함께 무더위가 찾아왔다. 원래 제 자리가 여기인 것처럼 한반도에 똬리 틀고 버티기, 굳히기에 들어갔다. 더위가 8월까지 계속될 것이라 하지만, 언제 이 계엄이 해제될지는 기상청도 모른다. 오직 하늘만이 안다. 계엄의 구호는 하나다. ‘한낮에는 찜통더위, 밤에는 열대야!’ 대항할 수가 없다.

여름 계엄군의 무기는 오직 밤낮 없는 무더위뿐이다. 어디에서 계속 보일러를 돌려 더위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 한낮 기온이 40도 이상을 기록할 것이다,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유언비어에 대부분 긍정적이다.

필자는 몇 년간의 여름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견뎌왔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자신이 없다. 일찌감치 항복하고 에어컨과 동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국가의 전력난을 걱정하지만, 여름이 끝난 뒤 터질 전기세 폭탄을 더 걱정한다. 이 여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정답이 없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 이제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화려한 별장이 아닌 한적하게 따로 지은 ‘별서(別墅)’정도면 행복하겠다. 여름에는 산 깊고 물소리 좋은 곳에,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바닷가에 오두막을 가지고 한반도를 공격하는 이 더위를 피해 유유자적하고 싶다.

올여름만 더운 것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역시 뜨겁도록 더웠다. 인근 밀양이 39.3도, 경주가 37.9도 더위가 찾아왔으니 올핸 40도를 기록하는 도시가 즐비할 것이다.

우리는 더위의 잔혹사를 쉽게 잊는다. 76년 전 대구가 40도를 기록했다. 1994년엔 슈퍼엘니뇨의 등장으로 6월부터 9월 중반까지 무더위가 이어졌다. 그해 온열 질환 사망자가 3384명이나 됐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뿐, 지구를 식히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름이 낭만적이었던, 기다려지던 계절인 때가 있었다. 학창시절,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록밴드 ‘키 보이스’의 노래 ‘해변으로 가요’를 들었을 때 나는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키 보이스는 여름 노래를 많이 불렀다. ‘해변으로 가요’ 외에 ‘정든 배’를 기억하고 있다. 노래가 여름 무더위를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노래는 따라 부르기도 가사를 기억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 더운 것은 아닌지.

부산 중앙동 시절,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 앞에 서 있다/바다로 가는 푸른 신호를 기다리며/중앙동 플라타너스 잎새 위에’ ‘여름 편지’를 쓰던 기억 또한 남아 있다. 곳곳에 시원하게 냉방된 카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얼음 빙수, 아이스크림이 준비돼 있지만 나는 여름 편지를 다시 쓰지 못하고 있다. 이미 여름에게 스스로 항복한, 자포자기가 시 한 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름엔 소나기처럼 좋은 선물이 없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지만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 가고나면 천지간에 서늘한 기운이 일었다. 요즘은 소나기조차 귀하다. 소나기가 멀리서 쏴아-하고 몰려오면 외할머니는 어린 나와 이종사촌형을 발가벗겨 마당에 나가 소나기를 맞게 했다. 그리고 비누를 묻혀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여름 소나기는 자연 샤워기였던 셈이다. 소나기보다 더 시원한 샤워기가 욕실에 있지만 더위에 지쳐 씻는 것조차 귀찮다.

아파트란 이름의 ‘닭장’은 사람을 사각형 안에 가둬놓고 서서히 시멘트를 달군다. 사방에서 열기가 뜨거워지고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그런들 덥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안에서 탈출구나 비상구를 찾아야 할 때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책읽기’로 여름더위를 이길 수 있다. 책읽기가 아니라 해도 무엇인가에 몰두하다 보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삼매경(三昧境)은,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다. 그런 경지가 여름을 이길 수 있다. 책을 읽는데 덥다, 춥다는 잡념에 불과하다. 필자는 읽고 싶은 책은 여름을 위해 아껴 둔다. 그리고 꼼꼼하게 읽다보며 많은 것을 얻는다. 책읽기 모임도 좋다. 카톡 독후감을 나누며 동락(同樂)하면 더 좋다.

이 무더위에 보양삼매는 권하고 싶지 않다. 삼복에 단 한 번 빠지지 않고 보양식을 찾는 무리가 있다. 보양 과잉이 더 덥게 만든다. ‘복(伏)’ 자의 생각부터 바꾸자. 사람(人)이 더위에 지친 개(犬)에게 시원함을 선물하는 날로 생각하자. 더위를 나누고, 시원함을 나눌 때, 이 여름이 시원해질 것이니!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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