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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한여름 밤의 허왕후신행길 축제 /윤정국

바닷길 1만 ㎞ 헤쳐온 ‘원조 한류팬’ 재조명

장엄한 러브스토리로 열대야 날려버리기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0 19:23:55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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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첫 국제결혼은 언제 있었을까. 기록으로 보면 2000년 전 경남 김해에서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 허황옥의 결혼이다. 요즘이야 국제결혼이 낯설지 않고 다문화가정 비율도 높아가지만, 그 옛날에 법도 엄한 왕실이 다문화가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대를 한참 앞서간 김수로왕과 허왕후. 김해가 외국인노동자 수가 전국 2위이고, 다문화인구 비율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국제결혼을 통해 후대인 우리에게 선주민(한국인)과 이주민(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화합과 창조의 큰 메시지를 남겨 준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오래된 미래’ 같기도 하다.

김해에서는 이 국제결혼을 기리기 위한 허왕후신행길 축제가 2014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오는 27일 전야제에 이어 28, 29일 이틀에 걸쳐 여름축제 한마당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과거 석전(石戰)놀이를 현대적으로 바꾼 수전(水戰)놀이를 시작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시민 참여 퍼레이드 경연대회와 타운파티, 인도영화제, 아시아문화체험 등의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축제의 꽃은 물론 왕과 왕비의 신행길 퍼레이드. 허왕후 역할을 할 인도 여성과 김수로왕 역할을 할 한국 남성을 뽑는 오디션이 지난 6월 초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열렸다. 특히 허왕후 역에는 인도 거주 6명과 국내 거주 인도 유학생 6명 등 12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현지 지원자들을 보면, 인도 남부 첸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배우,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의대생, 다국적 소프트웨어회사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열혈 한류팬이라는 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고, K팝과 한식을 즐기며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해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간 영화배우 여성은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국제 결혼이야기를 알고 있다”면서 기회가 되면 한국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태권도 초단 실력을 갖추고 있는 의과대 레지던트 여성은 “허왕후가 인도 남부 첸나이 부근에서 바다 건너 한국으로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호기심을 보였다.
국내 거주 지원자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었다. 한류팬이었다가 아예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들은 한국어를 능통하게 잘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고 경영학이나 패션 등을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오디션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춤과 노래를 선보일 정도로 인도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았다. 이날 심사에 참여했던 필자는 시간의 긴 강을 건너 허왕후를 눈앞에서 직접 만나는 느낌을 가졌다.

최종적으로 허왕후 역을 차지한 여성은 서울대에서 한국어 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한 안젤리 싱(31) 씨. 10년 전 한국에 온 그녀는 현재 한국 학생들에게 인도 문화와 힌디어를 가르치고 있다. 유창한 한국어로 심사위원들의 까다로운 질문을 척척 잘 받아내고 전통의상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기도 했다. 왕비에 걸맞은 품위도 갖추고 있어서 최종 낙점을 받았다. 그녀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UP)주의 주도인 럭나우시 출신이다. UP주는 김해시가 국제우호 도시협약을 체결하여 활발하게 문화 경제교류를 하고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허왕후의 후예들은 앞으로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에 더 많이 올 것으로 보인다. 13억 인구의 인도에 최근 한류 붐이 크게 불고 있고, 현지 세종학당과 한국문화원 등을 중심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맺어준 사랑을 믿고 험난한 바닷길을 건너 한반도로 온 허왕후는 어떻게 보면 오늘날 한류팬의 원조 격인 셈. 이런 뜻을 기려 허왕후신행길 축제를 한류 축제로 키운다면 한국과 인도를 이어주는 국제문화교류 축제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를테면, 인도에서 한류팬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허왕후를 뽑는 예비 축제를 진행한 다음에 한국(김해)에서 김수로왕을 만나게 하는 본축제를 갖는 방식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떠나왔던 강인한 여성 허왕후, 인습과 전통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도 여성을 가야의 첫 왕비로 맞아들였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김수로왕, 바닷길 1만 ㎞를 뛰어넘었던 이들의 운명적 사랑이 이번 축제에서 어떻게 재현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한여름 밤 고대신화의 도시 김해에서, 허왕후 역의 인도 여성 안젤리 싱 씨와 김수로왕 역의 부산 연극배우 박규남(30) 씨, 이 두 젊은이가 그려낼 가야사의 장엄한 사랑에 빠져들며 열대야를 날려버리는 것은 어떨까.

김해문화재단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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