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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기내식과 문어발, 그리고 ‘총수님’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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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8 19:28:37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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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철옹성 같던 가부장적 시스템도 바뀌고 있지 않나. 재벌기업만 무풍지대에 남아 있어도 좋은 걸까. 그들만 ‘중세의 영주’처럼 떵떵거려도 괜찮은가. 월급 몇 푼 준다고 부리는 사람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뱉고, 인간 이하 취급을 해도 된다는 면허장을 누가 그들에게 발급했나.


경제민주화가 어디 따로 있나. 편법을 동원한 기업 세습, 직원과 하청기업에 대한 갑질, 일가친척이 차린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이런 걸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두 눈 부릅떠 감시하는 게 경제민주화가 아닌가. 정치권력이 재벌 권력에 여전히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이 투표로 정권을 바꾼 보람이 없지 않겠나.


   
‘김치(Gimchi)’나 ‘온돌(Ondol)’처럼 한국어가 원산인 몇 안 되는 영단어 중에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도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재벌’과 ‘갑질’이란 단어가 외국 매체에 출몰하고 있다. 출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하필이면 항공사라는 대목도 묘하다.

‘재벌’은 원래 일본식 단어이지만, 한국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에 세계 경제학계에선 ‘한국발 학술용어’로 굳은지 오래다. 독일어에서 유래한 ‘콘체른((Konzern)’이 비슷하겠지만, 문어발 확장, 경영권 세습, 일감 몰아주기, 분식회계 등등 지극히 한국적인 재벌문화(?)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그 함의가 턱도 없이 부족하다. ‘갑질’도 마찬가지. 한영사전을 검색해 보면 한 단어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하게 씀’ ‘권력에 취함’ 따위로 풀어서 설명한다. 일본 교도통신은 갑질을 ‘파워하라’라고 옮겼다. 힘(power)과 괴롭힘(harassment)을 묶은 일본식 조어다.

몇 달 전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활극이 미국 뉴욕타임스의 지면을 장식했을 때다. 그 신문은 ‘갑질’을 ‘중세시대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업자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던 터다. 조 씨 일가는 한국어의 세계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니 국립국어원이 감사패라도 줘야 할 판이다.

대한항공 조 씨네 부모와 자식들의 행티는 널리 알려졌으니 생략하겠다. 아시아나항공을 소유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도 요즘 국민의 입소문을 타면서 ‘갑질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기내식 대란’ 말이다. 승객들을 몇 시간씩이나 공항에 붙잡아둔 것도 모자라 ‘노 밀(No Meal)’ 상태로 비행기를 띄웠으니, 밥 굶고는 못 참는 한국 사람들이 가만있을 리 있나. 글쎄,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떠들 것까지야 있겠나 하는 생각이 한편 들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뜯어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보도되기로는 박 회장은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에 매우 관심이 큰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 원에 인수할 때 빚돈을 끌어다 댔는데, 그게 동티가 나서 그룹 내 주력기업인 금호타이어를 팔아야 할 처지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의 지배권까지 위협을 받게 됐다는 거다. 그래서 기내식을 납품해 오던 독일계 회사더러 1600억 원을 자기네 회사에 투자하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돈을 투자하겠다는 중국계 기업과 손잡고 기내식 회사를 새로 차렸다는 거다. 그런데 그만 짓고 있던 공장이 불이 났다. 능력이 못 미치는 작은 회사와 부랴부랴 3개월짜리 단기 납품계약을 맺었다가 이번 사단이 터졌다는 게 아닌가.
국민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건 기내식 납품업체의 협력사 사장이 납품 시한을 못 맞추는 데 따른 벌금(?) 등 부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게다가 이 시끄러운 와중에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따님’을 일약 계열사 상무로 앉힘으로써 타오르는 불에 스스로 기름을 끼얹었다. 사과 기자회견장에서 이 문제가 나오자 “예쁘게 봐 달라”고 했다니 이거야말로 ‘똥 싼 주제에 매화타령’이 아니겠나. 둘째 딸의 ‘물컵 투척’이란 일견 사소한 일탈이 도화선이 돼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밀수 횡령 배임 등등 온갖 비리가 드러났듯, 금호그룹도 기내식 사건을 계기로 물속에 잠겨있던 이런저런 비리가 양파처럼 속속 까발려질 조짐이다. 다시 말해 갑질, 문어발 확장, 2세 경영 등등 재벌들에게서 연상되는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백화점 상품처럼 민낯으로 대중의 눈앞에 진열되고 있는 거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기내식을 못 먹은 승객들로부터 온갖 욕설을 대신 받아내야 할 뿐 아니라 밥 대신 준 쿠폰으로 기내에서 면세상품을 사는 사람이 쏟아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이 자기의 과욕이 초래한 그룹 경영 위기를 흑자인 아시아나항공에 전가하는 바람에 이 항공사가 멍들고 있다고도 한다. 직원들은 “우리는 회장 빚 갚아 주려고 출근한다”고들 한다던가. 게다가 박 회장은 그동안 여승무원들을 상대로 성희롱 논란도 일으켰다. 여승무원들은 “회장님 뵙는 날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죠” 운운 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에게 달려가 안기는 ‘기쁨조’ 노릇을 강요받았다고도 한다. 왕년의 누군가가 연상되는 대목이 아닌가.

그래서 아시아나 직원들은 대한항공처럼 쌓이고 쌓인 설움을 풀어 보려고 ‘직원연대’도 결성했다는 거다.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선 지금 한국의 재벌기업인들의 제왕적, 후진적 행태가 직원들에 의해서 하나 둘 까발려지고 있다. 하기야 어디 한진이나 금호그룹만 문제일까만.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우리나라 재벌문화 중에서도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2세의 경영권 승계’라고 한다. 세금 낼 것 다 낸다면 부모의 주식을 상속하는 거야 받아들인다 치자. 아버지가 ‘총수’였다고 새파란 나이의 자녀가 ‘자동 빵’으로 ‘총수’ 자리를 꿰차는 게 당연한가. 제 지분은 얼마 되지 않는데 지주회사를 장악하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말이다. 원래 그렇거니 하고 우리가 무감각하게 넘어가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북한의 권력 3대 세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판에 견제도, 임기도 없이 수십 년씩 대를 이어가며 ‘황제’로 군림하는 시스템이 자본주의란 이름 아래 용인되는 게 과연 정의일까. 그러니 그 자녀들이 ‘소황제’ 노릇을 하며 온갖 횡포를 부리지 않나.

한국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정치적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있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쫓겨나 감옥에 가는 세상이 아닌가. 사회 곳곳에서 철옹성 같던 가부장적 시스템도 바뀌고 있지 않나. 재벌기업만 무풍지대에 남아 있어도 좋은 걸까. 그들만 ‘중세의 영주’처럼 떵떵거려도 괜찮은가. 월급 몇 푼 준다고 부리는 사람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뱉고, 인간 이하 취급을 해도 된다는 면허장을 누가 그들에게 발급했나.

시간은 걸리겠지만, 변화의 바람 앞에 재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회장 일가를 규탄하는 것 자체가 예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그들은 오로지 SNS를 무기삼아 시민과의 연대를 통한 ‘부드러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재벌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도 예전처럼 관대하지 않다. 그만큼 세상이 탈권위화하고 있는 거다. 세상이 무섭게 바뀌고 있는데도 재벌 자신만 변화를 거부해선 큰코다칠 거다. 재수 없게 걸리면 검찰청에 불려가 잠깐 ‘조리돌림’ 당하는 걸로 면죄부를 받는 세상은 아마 앞으로는 끝날 거다. 집에 돌아가 또 누군가에게 함부로 분풀이하기도 힘들 거다. 요즘은 약자라고 무조건 참지는 않는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동영상으로 폭로되는 세상이 아닌가.

이참에 검찰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국민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를 속 시원히 파헤쳐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어디 따로 있나. 편법을 동원한 기업 세습, 직원과 하청기업에 대한 갑질, 일가친척이 차린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이런 걸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두 눈 부릅떠 감시하는 게 경제민주화가 아닌가. 정치권력이 재벌 권력에게 여전히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이 투표로 정권을 바꾼 보람이 없지 않겠나. 국회도 현실에 맞는 규제 법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구속이 만능은 아니지만, 생계형 절도범은 가차 없이 잡아넣으면서 재벌은 온갖 핑계로 풀어주는 법원도 각성해야 한다. 조양호 회장 자신을 포함해서 일가가 네 번이나 구속을 피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법 정의’가 무언지 고개가 갸웃해지니 하는 말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 우리는 재벌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미신을 오래 믿어왔다. ‘낙수효과’ 운운하면서 ‘재벌=국가경제’라고 누군가가 우리의 무의식에 주입한 공식은 이제 버릴 때도 됐다. 재벌 한두 명을 법대로 처리한다고 나라 경제가 결딴나진 않는다.

아, 한마디만 더. 이젠 ‘총수(總帥)’라는 호칭은 걷어치우자. 지금이 중세 봉건시대도 아니고 그들이 이순신 장군도 아닌데 그런 권위주의적 호칭으로 불러서야 쓰겠나. 그 단어에 재벌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의식이 압축돼 있지 않은가.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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