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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그가 부르는 노래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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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6 19:10:2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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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지인은 귀농을 결심했다. 마지못한 결정이었다. 그 직전까지 그는 잘나가는 해운회사 대표였다. 그러나 해운업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회복할 수 없이 기울어졌다. 그는 결국 회사를 정리하기로 하고 소위 말하는 빚잔치를 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 빈털터리였다. 죽고 싶었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며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생각 끝에 농촌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의 기억 속에는, 한창 등산 다닐 때 지리산을 오가며 지나쳤던 많은 농촌이 있었다. 그는 옷가지 몇 개만 넣은 가방을 메고 그곳으로 향했다.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요즘 시골에는 일손이 귀하다는 소문과 예순을 바라보지만 아직은 건강한 신체뿐이었다.

그가 간 곳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 구역에서 멀지 않은 어느 마을이었다. 포도가 달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 마침 ‘귀농인지원센터’가 있었다. 빈집을 하나 소개받았다. 낡은 집이지만 몸을 뉠 곳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었지만 지난날의 기억을 하루빨리 떨쳐내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자신을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밤을 꼬박 새웠다. 앞날이 캄캄하고 두려워서 달빛조차 칼날 같았다.

다음 날 그는 무거운 몸을 추슬러 일을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간 곳이 포도농장이었다. 농장주는 노동이라곤 해본 적 없어 보이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품삯은 안 줘도 좋으니 먹여만 달라고 사정했다. 농장주는 이제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와서는 사기 치고 달아난 도시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참 실랑이 끝에 그는 받아들여졌다. 워낙 절박하고 간절한 그의 눈빛에 한 번만 더 속자고 농장주가 마음을 바꾼 덕이었다. 마침내 일자리를 얻은 그는 뙤약볕 아래서도 죽을 둥 살 둥 시키는 대로 일을 했다. 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는 주문처럼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을 외웠다. 노동에 지친 몸은 잡념을 허용하지 않았다. 해가 지면 바로 곯아떨어지고 새벽이면 눈을 떴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했다. 그중에 간혹 호의를 갖고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마다 무조건 가서 도와주었다. 할머니들이 시장 갈 때도 따라가 무거운 짐을 들었다. 어디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 그는 즐겁게 그 일을 했다. 남을 돕는 일이 그렇게 보람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놀라운 변화였다.

그는 차츰 그 마을에 필요한 사람이 돼갔다. 이제 끼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집 저 집에서 밥 먹자고 부르고, 밥과 반찬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 무렵 안과의사인 친구가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마을에 안착하기가 더 쉬울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일은 그에게서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몇몇 사람의 눈길도 변하게 했다.
마침내 포도 수확 철이 되었다. 수확이 끝나고 나자 농장주가 제안했다. 자신의 포도밭을 좀 떼 줄 테니 도지를 조금만 주고 포도 농사를 지어보라는 것이었다. 몇 달 만에 포도밭이 거저 생기다니! 그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는 기꺼이 그 행운을 받아들였다.

포도 철이 끝나자 일감이 줄어들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러 다녔다. 농촌은 일할 데가 널려 있었다. 절 짓는 데서 돌을 져 나르기도 하고, 도로포장하는 데 가서 안내봉을 들고 차들의 진로를 안내하기도 했다. 집 짓는 데 가서 잡부 역할도 했다. 그에게 화려한 과거는 흘러간 물이었다. 지난날을 잊고 몸만 열심히 움직이면 돈이 자꾸 생겼다. 예전 같으면 그깟 것 했을 정도의 액수였지만 그는 차곡차곡 모았다. 그 사이에 몸은 더 단단해지고 얼굴은 검게 그을었다. 이제 누구도 그에게서 도시 남자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다음 해 그는 포도 농사를 지어 800만 원을 벌었다. 그에게 그 돈은 그가 해운사업을 하면서 막 벌어들이던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돈이었다. 그는 빈털터리였던 그에게 살 기회를 준 마을에 뿌리를 박고 싶었다. 그러려면 집이 필요했다. 그는 평소 형님이라 부르던 몇 사람에게 의논했다.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궁리를 시작했다. 드디어 마을 깊은 곳에 길은 없지만 풍광이 좋은 땅이 하나 수소문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땅 주인을 설득해서 시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땅의 일부를 헌납하여 길부터 만들었다.

지난가을, 그는 남원시 어느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작지만 숲속에 하얀 집도 하나 가졌다. 그곳에서 그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린다. 달빛도 칼날 같아 무서움에 떨던 그가 이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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