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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바람직한 소통 철학 /한상규

민선 7기 이끌 지방권력, 진정한 시민소통 위해선 위 아래 일방통행 대신 인간적 수평관계 구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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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4 1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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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북미 정상 간의 연이은 소통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데 이어 6·13지방선거가 끝나자 당선인들은 취임 후 각종 정책 현안을 쏟아내고 있다. 부산시장과 구청장들은 혁신이나 개혁 차원에서 과거의 산물은 폐기하려는 안을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과 소통을 하겠다고 소통위원회를 만들었다. 소통이 중요하긴 한데 어떤 모양새를 갖추느냐에 따라 그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이와 관련, 소크라테스 이래로 많은 서양학자는 교육을 통해서 소통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법’을 고안해 학문의 격을 높였고, 예수는 많은 제자와 격의 없는 인간 본질을 논했다. 석가모니는 고행을 통해서 얻은 삶의 지혜를 마음으로 전하고 상대방이 깨닫게 하는 데 공을 들였다. 공자는 제자들과 현실 정치와 민생을 교훈적인 어투로 답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소통을 통해서 많은 선업(善業)을 남겼다.

소통의 방식이 위에서 아래로 하면 지시나 전달이 되기 쉽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하면 민원이나 청원에 해당된다. 이 경우 조선 시대 신문고나 선비들의 상소문이 대표적이다. 가장 이상적인 소통은 이해관계를 떠난 수평적인 인간적인 관계다. 소통에는 상호 간의 신뢰와 예의가 있어야 오래가기 때문이다. 신뢰는 자신의 학문적 소양에서 나타나고 예(禮)는 인격적인 수양에서 갖춰진다. 다시 말해 학문은 유교적 가치관의 핵심인 경(敬)이 내면세계에 자리 잡아야 하고 예는 밖으로 실천하는 의(義)라고 본다.

남명은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말로 자신의 사상을 압축했다. 남명은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그야말로 인간적인 교유(交遊)가 돈독했다. 남명의 수제자인 오건(吳健, 1521~1574)은 산청에 살면서 지리산 인근 덕산 산천재까지 30여 리를 왕래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오건은 새벽에 일어나 아침나절에야 도착한 뒤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늦은 오후에 산청읍내로 돌아가곤 했다. 그는 하루 왕복 60리나 되는 험준한 산길을 통학하면서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에 과거급제 후 학록(學錄)의 자리를 거처 이조정랑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강학 일과가 끝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갈 때 산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그러자 제자 입장에서 스승이 다시 돌아간다고 하는데 혼자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건은 스승을 산천재 부근까지 다시 모시고 가서 새벽에야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관계는 사제지간을 떠나서 신교(神交)의 차원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교우 중 한 토막. 오건은 난세에 조정에서 일하던 시기 근심 때문에 스승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1566년 1월 15일 남명이 산청에서 오건과 헤어진 뒤 서울로 가는 오건에게 보낸 시를 보자. ‘한 발짝 내디디며 막 헤어지던 곳이 / 오고 오니 멀어져 백리인 듯 하누나 / 산마루에서 아련히 돌아보았더니/ 서울 가는 길은 더더욱 멀더구나(一脚初分處. 來來百里遙, 山頭回望盡 ,西路更迢迢)’. 이 시에 나타난 내용은 일종의 소요학파(逍遙學派)의 형태에서 만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적 그룹을 소요학파라고 하듯이 한국에도 이런 소통 문화가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조선의 큰 선비들이 이처럼 인간적인 수평관계에서 지위, 나이, 신분을 떠나서 외우(畏友)로 대하고 있다.

진정한 소통은 그리워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한다. 최근 남북 지도자의 만남에서 휴전선 내 짧은 야외 산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 또한 소요학파의 대화 기법이다. 실내 탁상에서 공개적인 대화보다는 야외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훨씬 효율적인 면이 있다. 사전 각본에 의한 대화는 협상의 밀도를 높일 수 있지만, 큰 틀에서 회담의 성과를 기대하려면 통상적인 외교적 기법을 벗어나 개인적인 역량과 인간적인 면을 보임으로써 상대방의 진정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평소에 널리 배우고 상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변별하고, 독실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중용(中庸)사상을 체득해야한다. 이 세상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어떠한 사물이라도 그 속에는 대립국면이 있고 서로 전화(轉化)한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는 소통 철학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남북대화든 자치단체장의 정책 현안이든 사업가의 업무에서든 모든 분야에서 소통의 철학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물질적인 조건을 앞세우는 것은 후진적 산물이다. 소통은 더욱 고급스러운 문화에서 다뤄야 오래가고 잡음도 없다. 이 점을 정치인들이 새겨야 한다. 소통은 권력과 힘 있는 자가 먼저 손을 내밀 때 허업(虛業)이 아닌 실업(實業)이 될 것이다.

남명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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