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강동수의 세설사설] 한반도에, 한국 정치에, 부산에 새바람이 분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7 19:00:50
  •  |  본지 28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주 그동안 총부리를 겨누어 온 적대국 정상들이 마주 앉았고 여당의 압승, 보수 야당들의 궤멸로 요약되는 지방선거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남북·북미 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길을 닦는 작업이라면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자신이 그 여정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압승에 무거운 책임을 가져야 한다. 지방선거에 국민들이 몰표를 준 것은 ‘문재인식 한반도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하는 대로를 닦고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 달라는 뜻이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달라는 뜻이다. 시민을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던 부산시장 당선인은 이번 신임을 무겁게 짊어져야 한다. 시민이 큰 멍석을 깔아준 만큼 뛰고 또 뛰어라.


   
상전벽해(桑田碧海)랄까, 지난 한 주는 말 그대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태풍처럼 몰아친 대전환의 길목에 서 있다는 걸 실감하는 나날이었다고나 할까.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회담과 그다음 날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는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는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전쟁을 치렀고 70년 가까이 총부리를 서로 겨누어 온 적대국 정상들이 마주 앉았다는 것 자체가 이전엔 상상도 못 한 그림이 아닌가. ‘여당의 압승, 보수 야당들의 궤멸’로 요약되는 지방선거 결과도 마찬가지. 나라 안팎에서 거대한 역사의 용암이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엔 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선거 결과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하나의 끈으로 묶인 동일한 사건의 다른 측면이다. 남북·북미 회담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향한 세계사적인 대전환의 출발점이라면, 지방선거는 오랜 냉전과 대결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우리 자신의 인식 변화에 밑돌을 놓은 사건이 아니었나 싶은 거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의 수에 말려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트럼프-김정은 합의가 좀 포괄적이 아니냐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부터 구체적인 프로세스 합의와 이행에 나서면 된다. 너무 조바심내거나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어떻든 김정은이 트럼프와 만난 것 자체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가역적인 프로세스의 하나가 아닌가. ‘원쑤 미제국주의자와의 성전’이라는 체제이데올로기를 조자룡 헌 창 휘두르듯 하며 70년 동안 ‘수령 세습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이다. 그런데,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와 ‘미제국주의의 두목’이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는 사진이 노동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북한 주민은 경천동지할 충격을 느꼈을 거다.

사실 북한 체제의 결속에는 핵무기보다는 ‘미 제국주의자 타도’란 구호가 더 핵심적인 요소다. 할아버지 때부터 써먹어 온 보검을 버리자니 김정은의 고민도 깊었을 터. 어쨌거나 북한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려면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다시 문을 닫아걸기엔 너무 멀리 왔다. 최고영도자 동지가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합의문에 서명하는 장면을 주민에게 보여준 이상 수틀린다고 다시 미국을 ‘제국주의자 깡패’로 몰아세우면, 미국의 응징은 말할 나위 없고 북한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 나올 터. 서구식 민주주의까지는 아니라도 북한은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나 베트남식 국가체제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김정은은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체제 변화의 불가역적 다리를 건넜다. 한반도에 부는 바람은 결코 일회적일 수가 없는 거다. 

남북과 북미 간 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길을 닦는 작업이라면,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자신이 그 여정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북한이 ‘미제국주의자’와 ‘남조선 괴뢰’를 적으로 삼는 걸 포기한다면, 우리 역시 북한을 흡수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수십 년간 계속돼 온 냉전주의를 털어내고 한반도에 평화의 길을 닦는 기초 작업인 셈이다. 

‘14:2:1’ ‘151:53:5:17’ ‘11:1’, 다들 아시는 대로 이번 지방선거의 전적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4개 광역단체장을 차지한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고작 2곳에 그쳤다. 기초단체장도 여당이 한국당의 3배 가까운 곳을 휩쓸었다. 12곳 중 11곳을 석권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는 말할 것도 없다. 이래도 괜찮을까 걱정 아닌 걱정이 들 정도로 일방적 게임이었다.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기에 편승했다는 건 그들 자신이 더 잘 알 거다. 따지고 보면 이번 선거는 ‘촛불집회’ 이후 이어져 온 강물처럼 도도한 민심 표출의 완결판이다. 특히, 북핵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의 마침표를 찍어 오라고 국민이 판을 깔아준 게 아니겠나. 그러니 이번 선거의 의미를 ‘문재인식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의 신임으로 읽어내는 것이 무리해 보이진 않는다. 원래는 지역 어젠다가 중심이 돼야 할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문재인 브랜드’ 하나만 보고 여당에 몰표를 준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한반도에 깔려 있는 음습한 냉전의 안개를 걷어내라. 전쟁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남북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하는 대로를 닦아라. 그래서 우리의 무의식 깊이 쳐진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 달라. 그게 국민의 뜻이다. 물론 가라앉은 경제를 띄워 올려 팍팍한 살림살이를 챙기고 일자리를 늘려달라는 뜻도 있겠다. 지방 권력에 더해 이번에 국회의석도 어지간히 보태줬으니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못 해 먹겠다는 핑계나 하소연은 더는 통하지 않을 게다.

그렇게 놓고 보면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세력이 이번에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은 이유도 자명해진다. 박근혜의 탄핵이란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도 정신 못 차렸다는 국민들의 미움이 컸을 테다. 그들은 반성하지도, 혁신하지도 않았고, 대안 없는 반대만 거듭했다.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지도 않았다. 그중에서도 국민이 가장 딱하게 여긴 대목은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냉전적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계사적 변화에 둔감한 채 60~70년 전 ‘반공주의’의 참호에서 빠져나올 줄 모르는 그들의 낡은 생각에 국민이 파산 선고를 내린 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숨은 뜻이 아닐까 싶다. 

이제 사후약방문을 낸다고 야단이겠지. 홍준표가 사퇴했으니 전당대회-새 지도부 선출 따위 낯익은 ‘코스요리’를 내놓을 거다. 주방을 어질러 놓은 요리사를 내치고 그 나물에 그 밥인 다른 요리사를 내세워 이름표만 바꿔 단 메뉴를 내놓는다고 떠난 단골이 다시 찾아올까. ‘보수 대통합’이란 이름의 메뉴도 내놓겠지만 그게 손님을 불러들일 만능 레시피가 될 것 같진 않다. 바른미래당도 폐점 직전 아닌가. 망한 식당 두 개를 합친다고 근사한 새 식당이 되겠나.  

내 생각엔 지금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패배의 쓰라림을 반추하고 또 반추하는 것밖엔. 이왕 ‘폭망(暴亡)’했으니 좀 더 망해라. 벼랑에서 떨어졌으니 좀 더 추락해라.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튈 정도 맨땅에 헤딩해라. 왜 국민이 자기네에게 그렇게 냉혹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라. 이명박·박근혜 시대부터 차근차근 복기해라. 대충 말고 처절하게 되짚어야 한다. 국정 농단의 종범 노릇을 했던 지난 과오를,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팔려 자기네끼리 지지고 볶았던 남루했던 자화상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라.

가장 중요한 건 낡은 냉전주의를 반성하는 것. 도대체 지금이 언제인가. 21세기로 넘어온 지도 20년이 다 된 때다. 세상은 무섭게 바뀌는데, 디지털로 무장한 젊은 세대는 무섭게 성장하는데 아직도 냉전의 냉장고에 갇혀 해동을 거부하는가. ‘꼰대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면 답이 없다. 지금 할 일은 이합집산이 아니라 보수의 이념을 재구성하는 거다. 급변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보수의 길을 암중모색할 때다. 그런다고 기사회생의 길이 금방 열리진 않겠지만 어쩌겠나, 국민의 신임을 얻으려면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을. 

내가 부산 사람이니 이 지면을 빌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에게도 몇 마디. 세 번의 좌절 끝에 네 번째 도전에서 뜻을 이뤘으니 우선 축하한다. “시민을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던 호소가 받아들여졌으니 이번에 얻은 신임을 무겁게 짊어져야 할 거다. 부산 시민은 이번에 16개 구·군 중에서 13곳을 민주당에 주었고, 시의회의 절대 의석까지 몰아주었다. 상전벽해가 아닌가. 이런 큰 멍석을 깔아줬는데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불성설일 터. 뛰고 또 뛰어라. ‘동북아 해양수도’라는 부산이 아닌가. 한반도 평화시대가 열리면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출발점이 될 곳이다. 부산이 그 호기를 선점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청사진을 그려내고 주춧돌을 놓아야 할 거다. 그리고 부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일자리를 늘리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고, 시민들의 일상적 행복을 늘려라.

   
한반도에 이제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주의란 이름의 망령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정치가 태풍처럼 몰려오고 있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민홍철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이채익 행안위 한국당 간사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