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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소에 관한 몇 가지 단상 /박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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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5 20: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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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喪失).

황소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주변에 황소가 보이지 않는다. 황소라는 이름도 사라졌다. 황소 대신에 슬그머니 고기 맛을 연상시키는 한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의 한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들판에서 밭이나 가는 누렁이 소가 아니다. 우선 몸집이 종자 개량으로 과거에 비해 거의 배(평균 290㎏에서 567㎏)가량 커졌다. 심지어 소의 분류도 달라졌다. 황소니 암소니 일소니 하는 것에서 지금은 오로지 고기질이나 가격에 따라 암소, 거세 수소, 비거세 수소로 구분한다. 소머리의 경우 암소에 비해 비거세 수소는 거의 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깃값이 좋은 수소의 경우 그 수난은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한우 개량사업으로 매년 두 차례, 전국에서 200마리 수송아지를 선발한다. 6개월 뒤 200마리 중 180마리를 씨수소 대상에서 탈락시키고, 20마리만 다시 1년6개월간 기른 뒤 정액을 채취해 축산농가에 보급한다. 여기서 태어난 송아지들을 사업소로 들여와 도축한 뒤 육질 검사를 한다. 이렇게 10마리 안팎의 씨수소 선발이 완성된다.

나머지 수소들은 이름만 수소이지 사실상 수소가 아닌 거세된 수소들이다. 원래 수소는 한 번 교미한 암소를 곁도 보지 않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의 수소는 암소를 봐도 그저 입만 벌리고 침만 흘려야 한다. 우수 종자에 선택되었다 해도 특별 관리를 받아 과거에 들판을 지배하던, 아니 이중섭 그림에 나오는 그 도도한 황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생명을 이어가는 초라해진 한국의 수소들은 너무 불쌍하다.



구도 (求道).

형이 울면서 집에 왔다. 앞산에 소 먹이러 갔던 형이 소를 잃어버리고 울면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우리 집 마당엔 동네 어른들이 모였다. 몇 개의 조를 나누어 산속으로 소를 찾아 나섰다. 어린 나도 어른들 틈에 끼었다. 캄캄한 밤 산길은 처음이었다. 무서움과 호기심이 반반 섞여 있었다. 좁은 산길 탓으로 사람들은 외줄로 걸었다. 등성이를 돌아설 때마다 여남은의 대열이 실루엣으로 보이곤 했는데 무서움에 떨던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비록 얼굴이 없고 빛깔도 없었지만 믿음직한 이웃 어른들의 실루엣이었다. 그 모습은 내가 곤궁해질 때마다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수호신과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소는 무덤가에서 머문다.”

누군가가 말했다. 주로 무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귀신이 나오는 야밤의 무덤이 무섭지 않은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캄캄한 밤이어서 오히려 소의 목에 달린 풍경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우리 조는 결국 허탕을 쳤다. 돌아와 보니 소는 다른 조에서 이미 찾았다. 역시 무덤가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감옥 (監獄).

소를 팔았다. 소 팔러 가던 날 아버지는 무엇이 아쉬운지 자꾸만 소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장에서 소를 팔고 온 아버지는 벌겋게 술에 취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아버지의 비명에 나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을 나가봤다. 비어 있어야 할 외양간에 어제 판 소가 떡 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얼마나 놀랐겠는가. 소는 고삐를 물어뜯고 그 집 외양간을 탈출한 다음, 사십 리 처음 간 그 낯선 밤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여기저기 긁히고 찢어지고 모습이 엉망인 채로 달려온 것이다.

“쇠야! 이눔에 쇠야 ….”

아버지는 말 못 하는 소 목덜미를 끌어안고 ‘쇠야, 쇠야’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적도 하지 않는다’ (김기택)



괴담 (怪談).

소가 아이를 낳았다. 그 괴상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말도 안 된다면서 무시했지만 일부는 ‘그래도’ 하면서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먼 길을 멀다고 않고 찾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소문의 현장을 확인하고 투덜거리며 돌아오는 한 무리와 마주쳤다. 역시 헛소문이었다. 소가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 성이 소씨인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서 괜한 고생 말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거기까지 온 것이 얼마인데’하며 돌아가지 않고 기어이 확인을 하러 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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