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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튀밥 /박재현

뻥튀기 장수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들던 아이들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뻥이요’ 소리가 그립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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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3 23:55:11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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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장수가 뻥튀기 틀 주둥이에 철망과 포대로 얽어맨 망태를 씌우고 쇠꼬챙이로 주둥이를 비켜 당기면서 “뻥이요!” 소리친다. 동시에 리어카가 살짝 들리는가 싶게 배가 불룩하고 다리 없는 외계인처럼 생겨 먹은 뻥튀기 틀은 덜컥 뒤로 밀려나며 하얀 연기를 뿜어 댔다. 동네 아이들은 대포소리 만큼이나 큰 뻥튀기 소리에 놀라 땟국이 자르르 한 조그만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뭉게뭉게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 연기 속에서 두 팔을 휘저으며 뻥튀기 장수의 리어카로 몰려들었다. 뻥튀기 장수의 저리 가라는 성화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이리저리 튀어 달아난 튀밥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래서 뻥튀기 장수가 동네 고샅길에 나타나기만 해도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뻥튀기 장수의 리어카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벙거지를 쓴 뻥튀기 장수는 영락없이 대군을 이끌고 “나를 따르라!”던 나폴레옹과 다를 바 없었다.

1970년대 초였으니 어지간히 가난했던 시절이라 뻥튀기할 쌀이 넉넉할 리 없었다. 어쩌다 뻥튀기 장수가 오면 아이들은 뻥튀기하자고 엄마를 귀찮도록 졸라댔다. 마지못해 엄마는 이듬해 밭에 뿌릴 강냉이 조금과 몇 달 동안 모아 두었던 누룽지를 한데 모아 뻥튀기 장수에게로 갔다. 그날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집에서 맡긴 뻥튀기가 터질 때마다 흩어진 것들을 주워 먹은 아이들은 자기 집 뻥튀기가 되어 갈 때쯤이면 이미 배는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광목 자루에 두둑하게 담긴 뻥튀기를 어깨에 둘러멘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한동안은 맛있는 과자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왜 그리도 신이 났었는지. 살림이 넉넉지 못해 구멍가게에서 파는 눈깔사탕도 사 먹을 기회가 없었던 내게 뻥튀기는 대단한 간식거리였고 훌륭한 과자였다.

하얀 쌀로만 튀겨 낸 튀밥은 뻥튀기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퍽퍽한 것 같지만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튀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어머니께서 큰맘 먹지 않으면 어려웠다. 어쩌다 어머니께서 양재기에 쌀을 듬뿍 담아 광목 자루에 넣고 내 손을 이끌면 그 날은 영락없이 하얀 튀밥을 맛보는 날이었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백옥같이 하얗고 통통하게 살찐 튀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오물거릴 생각뿐이었다. 오래도록 입에 물고 있을 여지도 없고 씹을 겨를도 없이 입 안 가득 달콤한 맛을 남긴 채 녹아 버리는 튀밥을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 뻥튀기 장수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다 만난 시골 장에서나 볼 수 있을까. 도시 한복판에서 뻥튀기 장수를 만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 더구나 있다손 치더라도 뻥튀기 아저씨는 신명 나게 “뻥이요”를 외치지 않는다. 뻥 하는 기계 소리와 뭉게뭉게 연기만 피어오를 뿐, 그 옛날처럼 뻥튀기틀 앞에서 이제나 터질까 저제나 터질까 뻥튀기 터지는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도 없다.

어쩌다 아파트 한 모퉁이에 뻥튀기 틀을 놓고 가스 불을 피워놓고 우주선 같이 생긴 뻥튀기 틀을 돌리는 벙거지를 눌러 쓴 뻥튀기 장수의 모습도 사라졌다. 

뻥튀기 틀도 자동으로 돌아가고 뻥튀기 주인은 그저 손님들이 부탁해 놓은 쌀이며 옥수수, 누룽지를 받아놓고 기계처럼 일을 하면 그만이다. 오래된 시장 한 귀퉁이에서 보리차 옥수수차를 튀기는 뻥튀기도 소리가 예전처럼 요란하지도 않다.

언젠가 시장통 한구석에서 뻥튀기 틀이 열리고 연기가 흐릿하게 걷히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왔는지 비둘기 한 떼가 뻥튀기 장수 앞으로 날아들었다. 부산한 뻥튀기 노인의 발길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비둘기들은 이리저리 튀어 달아난 튀밥을 쪼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뻥튀기 장수도 사라졌고, 그의 리어카를 따르던 아이들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쌀로 만든 튀밥보다는,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보다는 누룽지, 가래 떡살로 만든 노릇노릇 튀밥보다는 햄버거나 피자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마트나 가게에 가면 어딜 가나 과자들이 수두룩한데 달지 않고 강한 맛이 없는 튀밥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밥은 간식이고 그래서 밥도 잘 안 먹는 시대가 더욱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고.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튀밥이란 말도, 강냉이란 말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튀밥은 추억을 그리는 어른이나 배고픈 비둘기들만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뻥이요!” 귀를 막던 그리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뻥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퍼지던 구수한 연기도 없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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